삶이 지루한 도서관 사서 은수(유진)에게 어느 날 청량한 사건이 생긴다. 준오(이동욱)라는 남자가 찾아와 옛 애인이 남긴 메모를 보여주며 한 가지 부탁을 한다. 거기에는 “198쪽을 봐. 너에게 전해주고 싶은 내 마음이 거기 있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준오는 애인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 목록을 보길 은수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준오의 전 애인은 독서왕! 여하튼 은수는 198쪽의 메시지를 찾으려는 준오의 조력자가 된다. 그를 따라 전 애인을 찾기 위해 춘천에도 같이 가고, 그러는 사이 친구로 발전하고, 사랑도 찾아온다. 준오도 차츰 은수의 존재감을 느껴간다. 윤성희의 소설집 <거기, 당신?>에 실려 있는 단편을 원작으로 한 동명영화 <그 남자의 책 198쪽>(제작 디에스피이엔티, 감독 김정권)의 내용이다. <동감> <화성으로 간 사나이> <바보> 등의 멜로드라마를 연출해온 김정권 감독은 “원작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바람에 깃털이 날리듯 가벼웠다”며 “과하게 가지 말자, 꾸밈없이 표현하자, 생각했다”고 밝힌다.
과연 그 책 198쪽에는 어떤 비밀의 내용이 적혀 있는 걸까. 지난 12월3일 월요일 홍익대 인근에서 처음으로 그 책의 한장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장면은 은수가 카페에서 준오를 기다리다 옛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있는 걸 보게 되고, 은수가 당황해하는 사이 준오가 나타나 애인처럼 굴며 데리고 나간다는 설정이다. “감독님, 봐주세요. 이거랑, 이거랑, 어떤 게 나아요?” 앉아 있는 유진의 오른쪽과 왼쪽 어깨에 번갈아가며 한번씩 스윽 손을 얹어보면서 이동욱이 디테일을 체크한다. 누군가는 리허설 도중 그렇게 그가 나타나자 “오우, 멋지다, 홍 반장이다. 홍 반장!”이라며 들릴 듯 말 듯 재미난 농을 건다. 날씨는 짓궂어서 “이거 비냐 눈이냐” 웅성거릴 만큼 오락가락하지만, 배우들은 작은 장면이라도 집중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동욱이 애인인 것처럼 나타나 유진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 뒤 나갈 찰나, 유진은 “내가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달라”며 서로 호흡을 맞춘다. 촬영감독은 “자 느낌 충만할 때 가자”며 농을 던지고, 감독은 “자, 좋은데 한번 더!” 하며 껄걸 웃는다. 현장에는 촬영 막바지에 도착한 여유가 묻어난다. 198쪽의 비밀은 내년 상반기에 알 수 있다.
나현 시나리오 작가(<화려한 휴가>)
“18쪽짜리 원작에서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했다”
-각본을 인수받아 새로 썼다고 들었다. =처음 작가가 쓴 버전이 잘 안 맞았나보더라. 김정권 감독의 권유로 참여하게 됐다. 원작 소설도 읽어보고 하면서 내 해석이 들어간 각본으로 써봤다. 5개월 정도 작업했다. 원래 원작은 18쪽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관념소설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느낌이 좋았다. 최대한 그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줄거리는 다르다. 주인공 캐릭터를 상당 부분 다시 만들어야 했다.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썼나. =멜로물이지 않나. 보통 드라마나 영화는 사랑의 감정을 많이 아픈 주인공 등을 등장시켜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나. 그런 걸 반영하려 했다. 또 한편으로는 지나간 사랑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런 점에도 주목했다. 나는 멜로가 처음이고 감독은 멜로에 정통한 사람이니까 정서적인 느낌을 최대한 감독쪽에 맞췄다. 그 덕에 나도 많이 배웠다. 작고 밋밋해 보이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사랑은 무엇인가, 지나간 나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들으면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와 비슷하다. =그건 워낙 대단한 작품이라 비교하기가 좀…. 어쨌든 다르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작품의 느낌을 좋아하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