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더슨군, 재주는 충분히 알았으니 이제 제발 골방에서 나와 철 좀 들라고!” 웨스 앤더슨 감독은 미국 독립영화계의 뜨거운 감자다. 반복되는 그의 편집광적 스타일을 서술할 참신한 어휘를 찾다가 지친 평론가들의 호소에 대한 응답일까? 굳이 모교에 돌아가고(<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실물 크기 ‘인형의 집’을 만들고(<로얄 테넌바움>), 바다 밑 잠수함에 들어앉았던(<스티브 지소의 해저생활>) 앤더슨이 <다즐링 주식회사>에서는 감연히 인도 여행 길에 올랐다. 일단, 설정은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는 앤더슨은 지금까지 그의 영화가 틀어박힌 어떤 방보다 비좁은 인도 다즐링 협궤 열차 객실 안에 배우와 스탭을 몰아넣었다. 3개월 동안 실제 열차를 세트 겸 숙소로 빌려 촬영한 <다즐링 주식회사>의 인도는 <스티브 지소의 해저생활>에 등장하는 바닷속에 비하면 현실의 기슭에 가깝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하게 조작되고 비뚤어져 있는 수줍은 환상 세계다.
부유하지만 대책없는 부모 밑에서 방기되다시피 자란 <다즐링 주식회사>의 휘트먼 삼형제는 <로얄 테넌바움>의 남매들과 사촌쯤으로 보인다. 앤더슨 영화에 번번이 등장하는 슬프고 무기력한 가장은 이번에 아예 죽어버렸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장례식에 불참한 어머니(안젤리카 휴스턴)가 연락을 끊은 이래 휘트먼 삼형제는 소원하게 살아왔다. 모터사이클 사고로 죽다 살아난 장남 프랜시스(오언 윌슨)가 깨달은 바 있어 동생 피터(에이드리언 브로디)와 잭(제이슨 슈워츠먼)을 인도 여행에 초청하며 이상한 로드무비가 시작된다. 모이자마자 삼형제는 각자의 성격적 결함을 노출한다. 프랜시스는 “네게 뭐가 좋고 나쁜지 내가 더 잘 안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통제광이고, 피터는 아내의 임신 소식에 도망쳐온 겁쟁이다. 막내이자 가족사를 소설로 쓰는- 그러나 픽션입네 고집 피우는- 잭은 헤어진 애인의 자동응답기를 꾸준히 엿듣는다. 삼형제가 난관 속에서도 끌고 다니는 이니셜이 새겨진 루이 뷔통 가죽 트렁크는 죽은 아버지의 유품으로, 이들이 질질 끌고 다니는 마음의 짐을 직유한다. 아버지 유품을 둘러싼 아들들의 유치한 신경전은 취향에 맞는 물건을 수집하고 배열하는 작업이 연출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웨스 앤더슨의 페티시즘을 상기시킨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형식은 농밀하다. 영화의 구도는 ‘피사체를 화면 중앙에 가져다놓는 580가지 방법’이라는 책의 삽화를 방불케 한다. 앤더슨은 배우와 사물을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쓱쓱 움직여 화면의 중앙에 누구/무엇이 자리잡을 때 숏을 마무리하는데, 배우의 동선과 리듬, 미술작업, 카메라와 조명의 호흡이 정밀하게 맞아야 가능한 곡예다. 특히 2층 침대와 칸막이, 복도로 통하는 미닫이, 차창과 거울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분할되고 연장되는 기차장면은 백미다. 셋 중 하나가 빠지면 둘이 그룹을 짓고, 하나가 다시 돌아오면서 구도가 재편되는 화면 구성 패턴은, <다즐링 주식회사>의 이야기 전개 유형과도 은근히 일치한다. 과감한 줌과 카메라의 고개를 가로로 돌리는 패닝 기법도 적극 구사됐다. 긴 패닝을 쪼개 중간중간 멈추어 서는 카메라 움직임은 하나의 테이크 안에서 숏을 바꾸는 편집의 대역을 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번에도 용의주도하게 결론과 교훈을 피한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은 “날 이용해줘서 고마워요” 정도인데, 그럭저럭 위로가 된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진열장 너머로 보는 작고 정교한 유리 공예품과 같다. 한줌의 질료에 쏟아부은 정성과 기예에 찬탄하는 동시에 “이것에 평생을 걸다니 믿을 수 없군”이라는 의아함이 슬며시 솟는 것이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단편 <호텔 슈발리에>를 프롤로그 삼아 앞세워 상영한다. 파리 호텔에 처박힌 잭에게 헤어진 애인(내털리 포트먼)이 전화를 건다. 그녀가 온다는 말에 남자는 정장으로 갈아입고 엄선한 배경음악을 튼다. 그리고 둘은 이별 뒤에도 남있는 몸의 기억을 따라, 미지근한 와인 같은 섹스를 나눈다. “일부러 상처주려 한 적은 없어.” “상관없어.” 잭의 호텔방은 어른에게 야단맞은 아이들이 숨어드는 장난감으로 가득한 다락처럼 보인다. 이 단편에는, 여전히 웨스 앤더슨의 최고작인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순결한 광채가 깃들어 있다. 진짜 세계, 진짜 감정과 맨살을 맞대지 않으려는 청년의 필사적 회피가, 거꾸로 간곡한 열망으로 다가오는 요술 같은 찰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