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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위장 지지 논란

2주 전 박혜명 기자가 쓴 조지 클루니 기사를 보셨으리라. 기사에 나온 대로 조지 클루니는 스타 파워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미국 대선 후보로 유력한 민주당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렇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것은 할리우드 배우에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민주당 편이고 수잔 서랜던과 팀 로빈스가 진보정당 편이며 아놀드 슈워제네거, 찰턴 헤스턴이 공화당 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배우들의 정치 참여는 2002년 대선에서 두드러졌다. 문성근, 명계남 등이 노무현의 당선을 위해 발벗고 나섰고 박찬욱, 봉준호, 문소리 등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다. 물론 한나라당을 지지한 배우도 적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상황이 나쁜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자의에 의해 배우들이 정치적 신념을 표현하고 그걸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경우에 따라 매우 아름답다. 안젤리나 졸리가 굶주린 제3세계 아이들을 품에 안은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찍은 어떤 사진보다 예쁘다.

하지만 배우의 정치 참여 자체가 나쁜 일이 아님에도 30명이 넘는 연예인이 이명박 지지를 선언했다는 뉴스를 접하는 마음은 착잡하다.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온갖 추문과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대의명분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지지를 선언했다는 배우들 몇명이 결코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고 한 적도 없다는 얘기를 했다. 이번호 국내리포트 지면에 강병진 기자가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김정은, 박진희, 정준호 등은 지지 선언에 관한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선언을 이끈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이경호 이사장은 배우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신념에 따른 지지라면 한두명도 아닌 배우들이 하루아침에 지지를 철회한다는 일이 가능할까 의심스럽긴 하다. 아니 지지 철회란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경호 이사장이나 김정은, 박진희, 정준호 등의 배우 가운데 누군가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애초에 지지를 했냐 안 했냐가 논점이고 지지 철회는 일단 지지를 했다는 걸 인정한 뒤에나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거짓말을 했나 추궁하자니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BBK도 이런 문제였지 아마. 급조된 지지 선언이라는 느낌은 얼마 전 대학 총학생회장들의 지지 파문 때문에 더하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중대한 판단을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인가? 신념이 아니라 인맥에 끌려 영문도 모른 채 봉변을 당한 사람들이 많은 것인가?

배우의 정치적 신념은 힘이 있다. 배우의 이름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기 쉬운 이유도 그래서이고 정치와 거리를 두는 태도를 존중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스파이더 맨>의 대사처럼 “막강한 힘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막강한 힘이 발휘될 수 있는 이름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사용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 또한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잊혀질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후보에게 이런 논란이 한두번도 아니고 그때마다 책임지는 일은 없었던 탓이다. 되풀이되는 이런 사건을 보면 이명박 후보가 추구하는 대한민국이 투명한 사회일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누가 거짓말하는지 사사건건 따져야 하고 따져봤자 책임지는 경우는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니, 심란한 12월의 시작이다.

P.S. 필자의 사정상 메신저토크를 2주간 쉬게 됐고 내년부터는 메신저토크를 격주로 진행할 계획이다. 그리고 148쪽 게시판에 편집기자를 구하는 공고를 냈다. 잡지 만드는 일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분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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