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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토크] “마치 즐거움을 주변에 전염시키는 유쾌한 친구 같은 영화죠.”

고고60님(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오존층은 어쩌고님(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김혜리 “하지만 <헤어 스프레이>는 원작의 게이 감수성과 도발성은 배제한, 애매한 구석이 있어요.” 이동진 “궁극적으로는 신나는 10대 뮤지컬 정도지만, 어쨌든 충분히 흥겨워요.”

고고60님의 말(이하 고고): 오늘은 둘 다 <헤어스프레이>에 기원한 대화명이군요. ^^

오존층은 어쩌고님의 말(이하 오존): 저는 어제 <자유부인> DVD를 봤는데요. 백설희님께서 <아베크 토요일>을 열창하는 장면을 보니, 우리나라는 <동백기름> 같은 뮤지컬영화가 나오면 어떨까 싶더군요. ^_^

고고: 흠… 동백기름을 바르면 춤은 어떤 걸로 춰야 하나?

오존: 그야 맘보 아닐까요? 도라지 캐러 가자 헤이 맘보~~.

고고: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체 게바라처럼, 맘보와 탱고를 헷갈려하는 저로서는…. -..- 그래도 장국영의 맘보 춤은 알아요.

오존: 뮤지컬 <헤어스프레이>는 모처럼 보는, 인물이 아침에 자명종 소리로 일어나며 시작하는 명랑영화더군요.

고고: 영화 자체의 느낌도 시간으로 치면 딱 일요일 오전 11시 정도 같더라고요. 극중에선 평일이었지만요. 진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명랑 쾌활 뮤지컬이더군요.

오존: 1960년대 초를 배경으로 인종, 외모로 차별당하는 극중 인물들이 “죽지 않아, 지지 않아” 정신으로 펼치는 축제 한마당이죠. ^0^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볼티모어의 뚱뚱한 여고생 트레이시(니키 블론스키)가 흑인 친구들과 힘을 합쳐 지역 TV쇼의 인종분리주의를 철폐하고 스스로도 재능을 입증하는 성공담이에요. 역사는 진보한다는 당대의 낙천주의가 뒤에서 계속 코러스를 넣어주는 뮤지컬이었습니다.

고고: 영화의 배경인 1962년쯤의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려냈죠? 비틀스가 나오기도 전이고, 흑인 민권운동도 심각해지기 전이고, 베트남전과 히피운동도 아직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잖아요.

오존: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 사이쯤 되는 시기인가요?

고고: 그렇죠. 비틀스는 미국에서 1964년부터 인기였으니까요.

오존: <헤어스프레이>에서는 그맘때 막 피어났던 청년문화의 역동성도 느껴지죠. 50년대 중반부터 10대들이 소비자집단으로 힘을 갖게 됐다고들 흔히 말하잖아요? “우리가 세상을 신나게 바꿀 것이다”, 하는 10대들의 자신감이 스민 개선행진곡 같죠. 물론 오리지널 작품인 존 워터스 감독의 <헤어스프레이>도 80년대 후반 작품이니, 이 영화는 시대물이 아니라 해석의 관점과 장르 다루기의 관점에서 보아야 옳겠지만요.

고고: 미국인들은 확실히 60년대에 대해서 어떤 이상화된 추억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미국 역사상 가장 순수했으면서 가장 대책없었던 시대였으니까요. 50년대의 경제적 호황을 잇는 시기였던데다가, 심각한 사회문제들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전이니까요. 사실 시대적 배경은 미국 관객에게 어필하는 대목일 테고, 다른 나라 관객에게는 그야말로 아무 부담없이 즐기면 되는 뮤지컬이죠. 하긴, 미국 관객도 그럴 거야. ^^

오존: 영화의 주요 무대가 TV의 청소년 대상 음악쇼잖아요? 쇼프로그램이 사회적 진보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발상도, 천진하고 낙천적인 이 영화 속 세계에 어울리는 아이디어예요. ^.~

고고: ‘미스 틴에이지 헤어스프레이’를 뽑는 게 영화의 클라이맥스니, 말 다했죠. ^^

오존: 극중 쇼 제목은 ‘코니 콜린스 쇼’인데요. 그걸 보면서, 그 쇼의 출연자로 뽑히길 열망하는 것이 한국으로 치면 1980년대 <젊음의 행진>의 ‘짝꿍들’ 동경했던 거랑 비슷한 현상인가 비교도 해봤습니다.

고고: 아, 기억에도 새롭다!!! 아, 우린 같은 세대구나. 새삼. ^^

오존: 그럴 리가! 독자들께서 오해하시겠어요. -.-

고고: <영 일레븐>에서 활동한 ‘영 스타즈’의 대표 미녀 얼굴도 기억난다는. ‘아줌마’라는 희한한 이름의 라면 CF에도 나왔답니다. ^0^ 그런데, 원작이 있긴 하지만 <헤어스프레이>의 제작은 사실 요즘 미국에서 10대 뮤지컬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과 가장 관련이 있을 거예요.

오존: 어떤 예가 있나요?

고고: <하이 스쿨 뮤지컬>이나 <한나 몬태나> 같은 TV용 뮤지컬드라마들이 워낙 인기잖아요. 음반도 몇 백만장씩 팔리더라고요. 요즘 같은 음반 불경기에.

오존: 몰랐네요. <70년대 쇼>나 <브래디 번치 가족> 같은 복고드라마 생각은 했지만요. 그런데 확실히 한국 관객이 똑같이 공감하긴 어려울 거예요. 첫째로 원작인 존 워터스 영화나 그걸 각색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친숙하지 않고, 둘째로 극중 이슈인 인종차별 문제는 엄밀히 말해 흑백문제로 제한되거든요. 더 넓은 이유로는, 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역사에 대한 낙관주의에 같이 흥을 느끼기엔 현 시점의 한국사회 젊은이들의 상황이 좀 우울하지 않나 싶어요.

고고: 분명히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내용과 스타일이죠. 그런데 존 워터스의 영화들은 ‘악취미 영화’로 워낙 유명하잖아요? 전 사실 워터스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80년대 말에 나온 원작 <헤어스프레이>만큼은 재미있었어요.^^ 유일하게 귀여운 존 워터스 영화랄까. ^^

오존: 존 워터스는 “노출이나 욕설, 폭력이 없는데 X등급인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죠? -..-

고고: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는 나의 우상인데 존 워터스는 좀… -.-

오존: 남의 우상인가요? ^0^

고고: 그러네, 받침 하나만 넣으면. 이번 <헤어스프레이>는 원작과 비슷한데, 일부 다른 점도 있더군요. 원작에선 트레이시의 단짝 앰버의 엄마뿐 아니라 아빠 캐릭터도 있었는데 이번 영화에선 빠졌더군요.

오존: 배우 이야기도 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연 니키 블론스키는 완전한 신인인 모양이더군요.

고고: 특히 존 트래볼타!

오존: 주인공은 아니지만 트래볼타의 이름이 크레딧에 제일 먼저 나오더군요.

고고: 체중을 제외하면, 배우 서영희씨랑 아주 닮지 않았어요?

오존: +_+ 앗, 여배우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하셔도 돼요?

고고: 저는, 여주인공 블론스키양을 말하는 건데요. -..-

오존: 죄송. 니키 블론스키는 마르기 전 초기 브리트니 머피랑 닮았던걸요? <클루리스>에서 촌스런 전학생으로 나와서 알리샤 실버스톤에 의해 거듭나는 역으로 나왔을 무렵 말이에요.

고고: 저는 트레이시의 아빠로 분한 크리스토퍼 워컨의 연기가 참 좋더군요. 귀여웠습니다. ^^

오존: 뜻밖의 음악성을 과시해서 깜짝 놀랐다죠? 그런데 저만 몰랐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라고 하네요. 미셸 파이퍼도 ‘나쁜 마녀’ 스타일의 악역으로 등장했는데 가창력이 좋더군요. 재즈 가수로 분한 <사랑의 행로> 추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존 트래볼타 이야기를 잠깐 더 하고 싶은데요.

고고: 당연히! ^^

오존: 존 트래볼타는 눈빛이 촉촉하고 속눈썹이 길어서 여성적인 구석이 애초부터 있어요. <헤어스프레이>에서 뚱뚱한 특수분장에 하이힐 신고도 <토요일 밤의 열기>나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스텝을 밟는 모습을 보니 또 한번 “죽지 않아” 정신을 확인하게 되더군요. +_+

고고: 뭐, 워낙 타고난 스텝이시니깐두루.

오존: 만에 하나 이 작품으로 다시 오스카 후보에 오르면 경력관리계의 7전8기 대마왕으로 기록될 거예요. +_+

고고: ^.~ 후보라면 남우주연상인가요, 여우주연상인가요? <토요일 밤의 열기>로 절정의 댄스 감각을 보여주던 배우가 세월이 흘러 흡사 자신의 경력을 패러디하듯 <펄프 픽션>을 찍고, 다시 또 시간이 흐른 뒤 이번처럼 완전히 뒤집힌 배역을 한다는 게, 뮤지컬 장르의 흐름과 연결해서 참 흥미롭더군요.

오존: 원래 트레이시의 엄마 에드나 역은 남장여자가 맡는 것이 전통인 셈인데요. 여기서 트래볼타 연기가 좋은 건 확실하지만 오리지널 <헤어스프레이>에서 디바인이 분한 에드나 캐릭터와는 다른 식의 연기죠. 디바인은 ‘드랙퀸’이라는 이름을 대중문화에 들여온 배우라고 기록되었는데요. 존 트래볼타의 연기는 “나 남자인데 여장했어”라는 표를 내는 연기가 아니라 감쪽같이 여자인 척하는 연기잖아요.

고고: 확실히 디바인의 연기를 볼 때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함은 전혀 없죠. ^^

오존: 보수적인 드랙퀸이라고 해야 하나?

고고: 근데, 재미있는 대사를 존 트래볼타가 하더군요. 딸을 달래면서 “남자 마음은 내가 잘 알아!” 그러잖아요? ^_^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손의 성별은 감출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에드나의 손만큼은 완벽하게 남자 손이었습니다.

오존: 에드나 역의 해석에서도 보이지만 전 <헤어스프레이>의 입지가 조금 애매한 것 같아요. 영화가 제기하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나 진담인지 애매했고요. 솜사탕 같은 외관과 치약 광고 같은 미소가 일종의 가면인지, 정말 얼굴인지 좀 모호했어요.

고고: 전혀 정색하고 있지 않죠. ^.~ 가면 자체가 얼굴인 영화죠. 표면이 전부인 영화랄까요.

오존: 존 워터스의 원작은 ‘캠프’의 미학을 보여주었는데 게이 감수성이나 관능성, 도발성을 배제한 이 영화가 겨냥한 미적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했다는 거죠. 모든 게 유희인 듯 진행되다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거리 시위 시퀀스를 꽤 길고 진지하게 다룬다거나, 틈틈이 갑자기 사실적인 터치가 들어간다거나 반대로 간판의 그림이 움직이는 초현실적 표현이 나오잖아요.

고고: 궁극적으로는 신나는 10대 뮤지컬 정도로 기능할 뿐이죠. 영화 중반에 흑인들이 멋진 춤판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This is so afrotastic’이라고 주인공이 외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대사가 실제로 흑인적인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판타스틱을 애프로태스틱으로 바꾸는 언어적 재치를 과시하는 것이란 거죠. 이 영화에서 흑인적 가치 같은 것도 아주 도식적으로 표현되잖아요. 뮤지컬이 플롯을 도식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장르임을 감안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오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뮤지컬이니까 춤/음악 측면을 말해볼까요. 브로드웨이판을 못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극중에선 영화에선 계속 ‘니그로 음악’, ‘니그로 댄스’를 언급하는 반면 실제 음악과 안무가 그런 차별성을 또렷이 전달한 것 같진 않았어요.

고고: 극중 여성삼인조 그룹 ‘더 다이나마이츠’의 춤과 노래는 흑인적으로 다이너마이트 같긴 하더군요.^^

오존: 뮤지컬로서 형식이 미리 궁금한 관객이 있다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나 <그리스>의 안무와 음악 톤을 연상하시면 비슷하다고 안내(?)하면 될까요?

고고: 네, 저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떠올렸어요. 우아한 맛은 좀 적지만요.

오존: 암튼 확실히 <시카고>처럼 자잘한 편집으로 공간을 재구성하고 동작을 파편화하는 양식은 아니죠. 그렇다고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대범하게 유기적으로 공연을 보여주지도 않고요.

고고: 영화적인 온도나 플롯을 조성하는 방식도 <시카고>와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어쨌든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은 충분히 흥겹더군요.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진 않았지만요.

오존: 사실 저는 이보다는 더 도발적인 영화를 상상했어요. 물론 시대극이다보니, 교무실이 담배연기로 굴뚝이고, 임신부들도 마티니 마시며 담배 피우는 장면은 도발적이었습니다만. -_-# 한방이 될 만한 노래가 없고, 주인공의 승리가 뻔해서 극적 긴장감이 도중에 늘어진다거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고고: 저도 미국에서의 떠들썩한 반응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노래와 춤은 영화의 분위기와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

오존: 마치 옆에 있기만 해도 즐거움을 주변에 전염시키는 유쾌한 성격의 친구 같은 영화였죠.

고고: “여자의 자존심은 어디서 나올까요? 외모? 얼굴? 아뇨. 헤어스프레이죠”라고 노래하는 영화에서 뭘 더 바라겠어요? ^^

오존: 참고로, 머리카락 뿌리가 약하고 가는 여성이 헤어스프레이 잘못 쓰면 재앙입니다.

고고: 뽑히나요?

오존: 머리가 부스러집니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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