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독자를 공감각적 경험으로 몰아넣는 단편만화들을 묶은 책이다. 그 체험은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이루어진다. 작화에 볼펜을 사용했다는 <마녀>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불온하게 꿈틀거린다. 글을 읽는다고 해서 머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악몽처럼 읽는 이를 집요하게 붙들고 늘어진다. <마녀>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 중 처음으로 국내 소개되는 책으로, 2004년 일본 문화청 미디어예술제 만화부문 우수상 수상작이다. 한국판에는 일본판에서 빠진 컬러 일러스트 페이지가 실려 있다. <마녀>는 오컬트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기이한 존재들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복수를 원하는 마녀 니콜라와 그녀 앞에 나타난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스핀들>, 파괴자들에 맞서 숲을 지키고자 했던 인간과 정령들의 이야기 <쿠아루푸>. <페트라 게니탈릭스>는 우주에서 이상한 사고를 당한 비행사의 몸에서 발견된 돌이 불러온 기이한 사태들을 정리하기 위해 가톨릭 사제들의 부름을 받은 마녀 이야기다. 이외에도 여러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그 중심에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장면들이 있다.
볼펜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그 자신만의 힘으로 꿈틀거리며 자신만의 언어를 내뱉는 듯 보인다. 그 의미를 읽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언어로 생각하는 당신은 언어를 넘어서는 생각할 수 없어요. 당신보다 커다란 것을 당신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당신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는 있겠지만 당신 밖으로는 나갈 수 없어요.” 알 수 있는 존재들과 그 정체를 식별할 수 없는 존재들이 두 페이지 가득 메운 장면들을 <마녀>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자체가 꿈틀거리는 원초적 생명이다. 그 과정에서 언어를 과하게 사용하고 설명하고 나아가 가르치려 들지 않는 이유는 “‘체험’과 ‘언어’는 함께 쌓아나가야 마음의 균형이 맞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남을 저주하며 세상과 불화하는 대신 선험적인 세계, 자연 그 자체를 느끼고 읽는데 중점을 두고 묘사되고 있다. <페트라 게니탈릭스>에 이르면 마녀가 이 세계의 구원자가 되기도 한다.
“한번도 하늘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맑은 하늘은 푸르다’고 해봤자, 말은 틀리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거짓이다.” 언어가 차고 넘치는 세상을 비추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마녀>는 그런 언어의 도움 없이도 신비한 울림을 갖는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온몸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소녀의 경험은 말이 아니라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몸과 공명한다. <충사>의 우루시바라 유키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마녀>는 그 말의 뜻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