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에고(고바야시 사토미)가 도착한 남쪽 바닷가의 조그만 마을은 모든 게 심심한 곳이다. “저쪽은 바다고 이쪽은 마을”인 그곳은 코발트빛 바다와 하얀 모래밭을 제외하곤 무어라 경계지을 건물이 없다. 길을 찾아갈 땐 “불안해질 무렵 20m쯤 더 가서 우회전을” 하는 식이고, 강아지와 새, 염소 등 동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곳의 사는 방식은 모든 게 최소화되어 있는데 타에고가 머물기로 한 민박집 하마다는 손님이 많이 올까 두려워 명찰 크기만한 간판을 달고 있고, 민박집 주인 유지(미쓰이시 겐)는 밥을 짓고 먹는 것 외에는 딱히 하는 일이 없다. 영화는 타에고와 유지, 섬마을의 생물 선생님인 하루나(이치카와 미카코)와 주기적으로 마을을 찾는 빙수 아줌마 사쿠라(모타이 마사코), 마음이 동하면 여행으로 이곳을 찾는 요모기(가세 료)를 등장시켜 별것없는 삶의 심심한 일상을 빈칸 많은 리듬으로 담는다.
<카모메 식당>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카모메 식당>의 두 주연배우 고바야시 사토미, 모타이 마사코와 다시 함께 만든 영화 <안경>은 어떤 의미에서 <카모메 식당>의 후기다. 영화에서 타에고와 사쿠라는 슈퍼 같은 공항(마트 같은 건물에 정말 공항이란 두 글자만 써 있을 뿐이다) 문을 열고 섬마을에 도착하는데, 영화는 이 둘이 핀란드에서 온 것 같은 뉘앙스를 부정하지 않는다.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도 <카모메 식당>의 연장선이다. “졸고 있는 봄의 바다”처럼 늘어진 시간은 밥때를 제외하곤 별 의미가 없고, 사색을 특기 삼아 지내는 사람들은 빙수를 먹으며 언제나 똑같은 바다를 바라본다. 다만 <카모메 식당>이 핀란드라는 특정한 공간을 배경으로 완성된 이야기라면, <안경>은 ‘여행을 떠날 때의 기분’만으로 채워진 영화다. 영화에선 매일 화창하던 섬마을에 딱 한번 비가 왔다 개는데 여기서 여행은 한번의 끝을 맺고 다시 시작된다. 오기가미 감독은 비와 함께 사라졌다 빛과 함께 나타나는 사쿠라를 통해 이야기를 일종의 반복체로 꾸미고, “소중한 걸 숨기고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 안에 봉한다. 심심한 삶,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 대해 영화 자체가 과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오기가미 감독이 공간과 시간을 지워버리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안경(眼鏡)을 발견했다는 건 긍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