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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다운로드 바다에서 해적들과 한판 대결
이영진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7-11-27

한국영화계, 불법 다운로드에 강력 대응의지… 다운로드 통한 부가판권 시장 활성화 모색에 나서

“여력만 있다면 비디오나 DVD 출시를 안 하고 싶다.” 비단 한 제작자의 토로만은 아니다. 2001년 25% 정도의 매출을 기록했던 부가시장은 지난해는 10% 이상 줄었다. 2005년과 비교해 부가판권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무려 마이너스 30%에 달한다. 한때 부가판권 시장은 영화제작을 추동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안전판 노릇조차 못하고 있다. 부가판권 시장의 붕괴를 추동한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11월22일 오전 11시 서울 대한극장 2관에서는 ‘영화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대회가 열렸다. 투자, 제작, 배급, 상영 등 모든 부문을 망라해 200여명의 영화인들이 참석했다. 최근 몇년 동안 ‘영화인대회’라 이름 붙은 대규모 결의의 의제는 스크린쿼터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엔 불법복제 방지를 위해 영화인들이 대거 들고 나섰다. 왜? 이날 행사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하나는 불법복제가 산업 전반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불법복제를 눈감아줄 만큼 산업이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위기탈출을 위해서는 부가판권 활성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불법복제 근절이 전제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차승재 회장이 이날 “(한국영화는)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괜한 엄살이 아니다.

“한국영화산업은 말기 암 상태”

2005년 이후 한국 영화산업의 총매출은 ‘2년 연속’ 하락했다. 특히 부가판권 시장은 몰락 직전이다. 지난해 부가판권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마이너스 28.2%라는 처참한 수준이다. 반면 “올해 3/4분기까지 극장 수익은 전체 매출의 84%에 다다랐”(영화진흥위원회 집계)는데, 이는 다른 지역의 상황(미국 26.8%, 아시아 37.3%, 유럽·중동·아프리카 35.5%)과 비교하면 심각한 기형이다. “(한국은) 홈비디오 시장의 침체가 예상되는 거의 유일한 국가”라는 해외 보고서를 따르기라도 하듯 할리우드 직배사들은 DVD 사업 등을 모조리 정리하고 떠났다. “4만개나 되던 대여점”도 3500개 수준으로 줄었다. 기형적인 극장의존도는 안정적인 수익률을 저해하는 요소다. 극장에서 밀리면 비용을 만회할 길이 없으니, 개봉 시 극장에서 안 밀리기 위해 돈을 쏟아부여야 한다. 수익률이 밑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불법복제가 한국 영화산업의 적신호를 유발한 주된 바이러스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문화관광부가 올해 8월에 내놓은 ‘저작권산업 보호를 위한 불법저작물 근절 대책’에 따르면, 2001년 8천억원에 달했던 영화산업 2차판권 시장은 2005년 기준으로 5433억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 추정치이긴 하나 2001년에는 미미했던 불법복제 시장은 3199억원 수준으로까지 뛰어올랐다. 영화인협의회는 2005년에 극장부문 또한 불법복제로 인해 2176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제협의 이준동 부회장은 “이는 전체 산업의 존폐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시네마서비스 이원우 팀장도 “부가판권 시장의 침체와 불법 복제물의 범람은 상관성이 매우 높다”면서 “불법 다운로드 등과 같은 저작권 침해를 막는 것이 시장 활성화를 꾀할 수 있는 1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단호한 법적 대응을 취할 것

“50%씩 증가율을 보이며 급기야 DVD 및 비디오 등 2차판권 시장의 60%에 육박하고 있는” 불법복제 시장. 그러나 영화계 안팎에서 과거처럼 불법복제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3월 결성된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영화인협의회’에는 무려 관련 업체 128개사가 가입해 있다. 일부 영화사들이 전시 차원에서 고소를 하거나 영파라치 제도 등을 도입해 엄포를 놓던 때와는 다르다. 장동찬 제협 사무국장은 “아직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으나 내년부터는 단호한 법적 대응을 취할 것”이라며 “특히 불법 다운로드가 버젓이 이뤄지는데도 내버려두는 온라인서비스업체(OSP)들에는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협 차승재 회장도 11월22일 기자간담회에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으면 “내년부터는 강력한 생존권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답했고, 이준동 제협 부회장 또한 “법적 대응의 경우 끝까지 갈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다만 영화인협의회는 “비용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은 P2P나 웹하드 등의 특수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들에게서 영화 콘텐츠를 다운받는 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못하는 만큼 일단 대규모 캠페인을 펼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그린캠페인을 열었던 영화인협의회는 최근 극장과 인터넷에서 상영할 불법복제 방지 홍보영상을 제작했고, 11월22일에는 극장 상영용 홍보영상을 공개했다. 불법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차승재 제협 회장은 “처음부터 불법행위임을 너무 강조하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영상물을 만들었다”면서 “향후 조금씩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방안에는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영화계의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정부 또한 올해 6월 개정 저작권법의 시행을 전후로 조금씩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학가와 역사를 중심으로 불법복사물 단속을 벌이는가 하면 최근에는 개정 저작권법에 따라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들에 대해 불법 전송을 차단하는 필터링 조치” 등을 의무화했고, 3차례의 모니터링을 한 결과 이를 위반한 업체들에는 “최고 3천만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 차승재 제협 회장은 “(지금까지 불법복제 근절을 위한) 치료책은 있는데 제대로 투여를 안 했다”면서 “좀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단속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다운로드 시장, 충무로의 블루오션

불법 다운로드가 없어진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부가판권 시장이 회생하는 것은 아니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이미 가라앉은 DVD와 비디오 시장이 다시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고 잘라 말한다.

이미 온라인으로 향한 젊은 관객의 발길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불법복제로 얼룩진 온라인을 정화하고, 여기에 대안적인 형태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이원우 시네마서비스 팀장은 “<왕의 남자>의 경우 우리 입장에서 온라인 VOD 서비스로만 적어도 5천, 6천만원의 수익을 거뒀다”면서 “이전에는 없던 수익인데다 불법복제가 줄어들면 시장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협 또한 이를 모르지 않는다. 알려진 대로 제협은 최근 온라인 저작권 신탁관리 위탁사업자로 <씨네21>을 선정하고, 온라인 부문에서 본격적인 디지털 콘텐츠 시장 만들기에 들어갔다. 불법복제 근절과 부가판권 시장 회생이라는 두 마리 대어를 얻기 위한 한국영화의 낚시질은 이미 시작됐다.

“불법 다운로드만 잡으면, 가능성 무한대의 시장”

씨네21i 김준범 이사 인터뷰

-제협으로부터 위탁받은 사업에 대해 설명해달라. =제협을 대신해 온라인상에서 저작권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신탁받은 저작물의 판권, 영화파일, 관련 데이터베이스 등을 아카이브에 하나로 모아 인터넷 포털 등의 서비스 업체들에 제공하고, 또한 제협과 소속 권리자들에는 정산시스템을 제공해 수익을 온전히 돌려주는 것이다. 씨네21i는 제협으로부터 위탁받은 저작물뿐만 아니라 외화, 독립영화 등의 온라인 저작권도 관리한다.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을 소유한 모든 권리자들에게 열려 있다.

-내년 1월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고 들었다. 현재 시스템은 어느 정도 완성됐나. =80% 정도다. 시스템 구동은 12월까지 모두 완료할 예정이다. 지금 속도라면 내년 1월부터는 정식 가동이 충분히 가능하다. 불법 다운로드가 이뤄지던 웹하드나 P2P 서비스 업체들의 양성화를 위한 논의도 맡아서 진행할 예정이다.

-제공하는 파일의 해상도는 어느 정도인가. 또 정산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도 궁금하다. =스트리밍은 HD급 화질이다. 광케이블이 많아졌으니 초고속 통신망을 활용하면 다운로드 또한 고화질 서비스가 가능하다. 동영상 압축기술 솔루션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퀄리티를 자부한다. 정산시스템은 해외에서 검증된 전문개발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확보 중인데, 이를 통해서 별도의 시스템 구축없이 연동만 하면 권리자는 디지털 저작물의 매출과 유통 상황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단매 형태로 복잡하게 계약이 얽혀 있던 과거의 온라인 서비스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특정 온라인 서비스 업체와 계약하는 건가. 서비스 가격은 어느 정도 선인가. =아니다. 콘텐츠를 원하는 모든 서비스 업체들이 대상이다. 기존의 서비스 가격을 감안해서 유저들이 손쉽게 즐길 수 있을 적정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저작권자들과 협의 중이다.

-부가시장이 몰락 직전에 있다. 영화계 안팎에서 온라인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다. =불법 다운로드가 성행하는 상황이라 유료 서비스에 대한 이용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저작권법 개정 등 단속 의지나 캠페인 전개 등을 통해 불법 다운로드가 근절되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다. 디지털 전송을 통한 서비스는 통합될 것이 분명한데, 이중 온라인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