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은 ‘네티즌이 대선을 접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터넷상의 갑론을박이 여론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온라인 공간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명박은 땅 박사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식의 세살 먹은 애도 다 알 만한 얘기라도 ‘걸면 걸린다’. 선거법 93조 때문이다. 이 법은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할 목적으로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광고, 사진, 문서,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을 퍼뜨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애초 후보자 상호비방 등 선거운동이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기타 이와 유사한 것’에 인터넷이 포함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할 목적’이 과도하게 해석되면서 네티즌의 입에 재갈이 물렸다. 한 네티즌은 이회창 후보 아버지의 친일 논란에 대한 글을 올렸다가 경찰로부터 “당신이 그걸 봤어?”라는 추궁을 당해야 했다.
11월22일 현재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네티즌은 1596명. 선관위가 삭제한 게시물은 6만3019건이다. 돌발영상 등 기존 매체에 나온 이명박 후보 관련 화면을 캡처해 그 아래 이 후보의 ‘문제적 발언’을 달아놓았던 한 대학생도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단순한 의견개진조차 하지 않은 터였다. ‘한나라당의 진정 사건’이라는 그의 죄목은 게시물이 ‘여기저기 퍼날라졌다’는 것이다. 올해 붐이었던 UCC에 대해 선관위는 ‘단순한 의견개진이나 의사표시라도 반복하여 올리거나 퍼나르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의도로 보고 있다. ‘반복하여’의 기준은 그야말로 이현령비현령이다. 세번 올리고도 “쟤 반복했어요” 찍히면 걸리고, 100번을 올려도 안 찍히면 넘어간다. ‘카피 앤드 페이스트’는 인터넷의 기본 속성인데, 법이 이를 못 따라가고 그 상황이 주먹구구로 악용되는 것이다. 한 당의 알바들은 고소·고발용 ‘댓글 감시’가 업무이고, 다른 당의 알바들은 이런 감시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돕는 게 업무이다. 소리없는 사이버전이다. 어느 당인지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저기 부산 경찰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고 싶지는 않)다.
누구든지 선거에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의사를 밝히면 안 된다는 것은, 누구든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정작 선거에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할 말을 안 하는 사람도 있다. 이명박·이회창 두 후보는 스스로 재갈을 물었다. 기를 쓰고 방송 토론을 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