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다냐 스키아디)는 몸을 파는 17살 소녀다. 뒷골목에서 욕정에 굶주린 남자들에게 몸을 허락하고 그 대가로 약간의 돈과 마약을 얻으며 산다. 하지만 한살 어린 나디아(카트리나 슬라블로)가 등장한 이후 매음굴에서 생계를 꾸리는 것마저도 여의치 않다. 비정상적인 욕구 해결을 호소하는 의뢰인들이 언제나 적극적인 나디아를 찾는 동안 마티아를 퇴물 취급해온 보스의 구박도 점점 거세진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택한 마티아와 달리 “이곳이 자신의 무대”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나디아.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척한 시선을 오히려 즐기는 나디아를 보면서 마티아는 질투와 경쟁심을 느끼고, 그 감정은 어느새 나디아를 향한 관심과 애정으로 변한다. 마티아의 그런 마음을 받아들이고 또 즐기는 나디아는 동거를 제안하고, 마티아 또한 나디아와 함께하면서 잠깐의 행복함을 느끼지만, 이내 마티아는 또 다른 결핍의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 결핍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을 불러온다.
섹스와 폭력과 마약에 노출된 10대 소녀들의 삶을 그린 영화는 ‘하드코어 소녀백서’라고 부름이 적당하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 부모가 잠든 사이 집에 불을 질렀던 나디아는 듣고 싶은 CD 한장을 손에 넣기 위해 몸을 쉽게 내주는 소녀다.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고급 콜걸에서 잡지 모델로까지 승승장구하는 나디아를 따르던 마티아는 결국 이 과정에서 살인을 공모한 상황에까지 빠져들게 된다. 언제나 나디아를 바라보지만, 언제나 마티아의 손엔 나디아가 1회용으로 쓰고 버린 욕망의 잔여들만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제 욕망을 채우지 못해 마티아가 파국을 택하는 건 아니다. 나디아처럼 끝없이 욕망을 세상에 분사할 만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드코어>는 이드(id)의 질주를 따르지 못하고 결국 법의 세계에 안주하는 불안한 자아의 로드무비로 읽히기도 한다.
연출과 각본을 겸한 데니스 일리아디스는 그리스 출신 감독. 광고계에서 이력을 쌓았고, 감각적인 편집 솜씨가 돋보이는 <하드코어>는 그의 장편데뷔작이다. 혹시라도 ‘쎈’ 제목에 혹해서 눈요기할 생각은 말 것. 불편한 상황을 관음하라고 종용하는 영화는 아니니까 말이다. 대신 카메라는 두 소녀의 심적 진동에 좀더 초점을 맞춘다. 테살로니카,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등에서 <하드코어>가 상영되며 주목받았던 데니스 일리아디스는 현지 보도에 따르면 웨스 크레이븐의 데뷔작 <분노의 13일>을 리메이크할 적임자로 물망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