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인타운, 재미 한국인 졸부들을 상대로 하는 룸살롱 앞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룸살롱 영업이사인 전진호(정준호)가 누군가의 총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것. 이후 사건의 용의자로 14살 한국계 소년이 잡히고, 장래가 유망한 한국계 변호사 존 킴(존 조)은 소년의 무죄를 증명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자 한다. 그러나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갱단의 일원인 마이크(김준성)는 의뭉스러운 태도로 존 킴 주변을 맴돈다. 신분은 다르지만, 같은 한국계 남성이라는 이상한 유대감이 둘의 만남을 지속시키고, 상황은 점차 처음의 의도와는 점점 멀어져 파국으로 향하게 된다.
<웨스트 32번가>는 뉴욕의 한인 동포사회를 배경으로, 한국계 미국인 감독과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이다. 영화는 변호사 존 킴을 중심으로 하는 백인 중심의 상류층 세계와 환락의 밤거리를 떠도는 한국 갱단의 세계를 두축으로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스릴러와 누아르의 조합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는 법정드라마의 껍데기를 쓴 조폭영화가 되어간다. 말하자면 범인을 밝히기 위한 치밀한 법정드라마라기보다 미국 속 한국 조폭들의 문화(?)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어린 관찰기에 가깝다는 말이다. 할리우드영화에서 중국, 베트남 갱단에 가려서 제대로 빛을 본 적 없었던 한국 갱단의 모습이 전면화될 때, 우리가 보는 것은 여느 한국 조폭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그 폭력의 이미지, 언어의 반복이다. 미국사회에 제대로 편입하지 못하고 뉴욕의 룸살롱과 클럽과 술집을 전전하며 거기서 한국을 찾는 한국계 어린 갱들의 불안한 정체성은 한심하기에 앞서 안쓰러울 지경이다.
마이클 강 감독이 한인 동포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상했던 것보다 비관적이다. 양심을 내세우며 동포를 돕겠다고 나섰던 존 킴이 마이크에게 무력하게 끌려다니다가 그와 공모함으로써 미국의 주류로 안착할 때, 영화는 이 둘을 동일한 선상에서 취급한다. 이들의 사회적 위치는 표면적으로는 극과 극에 있지만, 사실 이들은 결국 미국사회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영혼을 파는 동일한 족속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교민사회라는 배경적 조건을 제외하고는 정치인과 조폭이 공모하는 일련의 한국영화들과 차별되는 어떤 특수성이나 시선을 찾긴 어렵다. 더욱이 처참한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미국 경찰의 등장 한번 없이 오직 존 킴 홀로 해결하려는 모습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