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호수>는 한 소년의 여행기다. 여느 로드무비처럼 사람들을 만나 추억을 만들고 깨달음을 얻는 여행이지만, 보는 이가 쉽사리 동참하기는 어렵다. 누군가의 꿈속을 헤집는 기분이라면 설명이 될지.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는 귀, 사막 위에 풍선처럼 떠 있는 비행기, 물방울 별로 만들어진 하늘로 향하는 길 등 <달리의 호수>는 몽환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소년과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도 이해보다는 말 그대로의 느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소년은 첫 번째 도착지인 호수에서 “소원의 소리”를 채집하는 남자를 만나고, 사막에서는 자신이 “바람의 장난감”이었을 것 같다는 비행기 조종사와 대화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어느 동굴 속을 헤매던 소년은 별에 닿기 위해 별로 길을 만드는 할머니를 만난다. 재미있는 동화라기보다는 선문답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분위기를 느꼈다면 그들이 짓는 기적 같은 미소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소년에게서 위로를 얻고, 소년은 다시 그들에게서 여행을 재촉할 수 있는 기운을 얻어 길을 떠난다.
<달리의 호수>를 연출한 김윤희 감독은 “특정한 이야기를 생각했다기보다는 내가 평소 좋아하던 이미지를 모아봤다”고 말한다. 당연히 꿈처럼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정리한 것도 텍스트로 가득 찬 시나리오가 아니라 콘티였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이미지를 모아보니 3개의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그걸 엮어보니 <달리의 호수>가 만들어진 것이다. 소년이 만나는 세 사람 역시 평소 김윤희 감독이 애착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을 모델로 했다. 소년이 처음 만나는 남자는 살바도르 달리를, 사막 위에서 비행기와 함께 사는 남자는 <어린 왕자>의 작가인 생텍쥐페리를, 그리고 할머니는 “아직도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감독의 친구다. 그렇다면 목적지 없이 여행을 떠난 소년은? 물론 그는 김윤희 감독 자신의 꿈이 투영된 인물이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겪을 수 있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던 것 같다. (웃음)”
<달리의 호수>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속 세계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면 그것도 전혀 맥락과 다른 감상은 아닐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김윤희 감독을 애니메이션으로 이끈 주역이다. “현실에 없는 환상을 현실로 만끽하게 해주더라. 그런 환상에 공감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게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매력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애니메이션 하청업체에 들어간 그는 <인랑> <뱀파이어 헌터> <메트로폴리스> 등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에 참여했지만 창작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다. 이후 “연출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 그는 현재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크로스필름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한 지 11년이 됐지만, 쉬운 게 없다. 처음에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지만, 이제는 연출을 잘하고 싶고, 이야기도 잘 만들고 싶다. 하지만 그런 걸 하나씩 넘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가 큰 것 같다.” 요즘은 내년이면 본격적인 윤곽이 나올 회사의 작품과 저예산으로 기획한 자신의 장편데뷔작을 준비하는 중이다. 물론 소재는 역시 환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자신이 느낀 소중한 감정을 캡슐에 넣어둔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몇 십년 전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기도 하고 남의 감정을 훔치기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사는 건 그렇지 않은데, 작품을 구상하다보면 환상의 세계에 이끌린다. 어쩌면 내가 사는 현실이 환상처럼 아름답지 않기 때문인 건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