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의 개막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레드카펫의 중심 거점인 레스터 스퀘어 바로 옆 차이나타운에서는 이틀 전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불법 체류 중국인들의 강제 연행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러시아 마피아와 동유럽 이주노동자가 어울려 살아가는 런던의 현재를 다룬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이스턴 프로미스>가 올해 런던영화제의 개막작인 점을 생각해보면 그 어떤 영화제의 개막식 이벤트보다 끈끈하면서도 화끈하고 상징적인 장관을 연출한 셈이다. <이스턴 프로미스>가 크로넨버그식의 잔혹동화라면, 폐막작인 웨스 앤더슨의 <다즐링 주식회사>는 유쾌한 동화로 영화제의 수미상응을 이루었다. <라스트 킹>과 <바벨>이 지난해 행사의 시작과 끝에 놓였음을 떠올리면 이번 영화제가 얼마나 즐겁고자 애썼는지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주간지 <타임아웃>과 함께 마련한 자유방담의 한 꼭지 주제인 ‘외국 땅에서의 필름메이커’가 정확하게 가리키듯, 런던영화제가 제시한 올해의 화두는 ‘이미’ 국경을 넘어선 이국적자(로서의 감독)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런던의 크로넨버그, 인도의 웨스 앤더슨, 파리의 허우샤오시엔처럼 굵직한 간판스타들은 물론이거니와 방담의 참석자인 아시프 카파디아, 벤 홉킨스, 앤드루 이튼, 닉 브룸필드처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막론하고 올해의 영화는 기꺼이 타자의 시선을 중심에 두고자 하였다.
이와 비교해볼 때 영화제가 추려낸 할리우드영화들은 분명 다른 지점에서 수렴하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로버트 레드퍼드의 <로스트 라이언즈>를 비롯하여 토드 헤인즈의 <아임 낫 데어>, 숀펜의 <인투 더 와일드> 등은 베트남전으로 눈길을 준다. 현재의 근심이 비롯된 기원을 좇다보니 결국 낯선 땅에서 맞이한 패전의 기억, 애당초 개입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에 다다르고 만다. 어쩌면 할리우드 안이나 할리우드 밖이나 모두가 관심을 갖는 건 같을 수밖에 없다. 부시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 차이라면 할리우드 바깥에서는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보려 하는 반면, 할리우드 안에서는 짐짓 고뇌의 몸부림을 치려 한다는 점이다. 부시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그의 이미지를 집어넣는 시도가 이미 식상한 유머 코드가 되어버린 상황 탓인지 타이틀 스폰서인 <타임스>가 자신들의 갈라 상영작으로 <로스트 라이언즈>를 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회가 끝나고 출구에서 배포한 당일자 <타임스>에는 해당 영화에 대한 썰렁한 감상평을 실토해야만 했다.
일찌감치 에딘버러영화제가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 일정을 조정한다고 발표했고, 로마영화제가 기어이 앞자리에 끼어들었기 때문에 영화제 조직위로서는 속앓이를 했을지언정 그렇다고 런던영화제가 자신의 존재 근거마저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런던의 풍경과 영화 속 명장면을 병치시킨 지난해의 영화제 트레일러를 이번에도 고스란히 재활용한 것처럼 이미 런던은 영화인 게다. 개막 당일 보여준 풍경마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