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7년, 하이테크로 무장한 일본이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듯 문을 걸어잠근다. 10년이 지난 2077년, 세계 최고의 군사강국 일본은 온 세계를 자신들의 수출품으로 점령하지만 위성 촬영을 막는 보호막마저 친 이 섬나라에서 뭔가 수상한 기미가 새어나온다. 그리하여 쇄국정책 아래 단 한명의 외국인도 출입하지 못한 이곳에, 그 음모를 캐내고자 미국 특수부대 스워드(SWORD)가 잠입한다. 스워드 부대원인 벡실은 역시 스워드의 일원인 리온과 연인 사이. 벡실에게 감추고 있지만 리온은 일본에 얽힌 비밀을 지니고 있다.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일본에 잠입한 그들은 보호막을 파괴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직전 일본군에 들켜 쫓기는 신세가 된다. 다음 임무를 수행코자 대열에서 이탈한 벡실만이 홀로 살아남아 레지스탕스 조직과 그 리더인 마리아와 마주한다.
<벡실>은, 뚜렷한 세계관을 지닌 SF물들이 그러하듯 다소 복잡하고 충격적인 설정을 따르는 SF애니메이션이다. 거대한 군수공장에 지배당한 일본에선 생명의 온기가 사라진 지 오래일뿐더러 이미 그 땅덩이조차 온전치 못하다. 그러나 일본 감독이 연출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인 시공간을 가르는 것은, 용기와 희생이라는 가치를 밀어붙이는 다소 앙상한 줄거리다. 부둣가나 사막에서 벌어지는 일부 액션신은 적지 않은 쾌감을 전달하지만 소리 후미히코 감독의 전작들, 데뷔작 <핑 퐁>과 제작자로 참여한 애니메이션 <애플시드>를 기억하는 이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올해 부산영화제 상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