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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나라의 세 가지 이야기 <로스트 라이언즈>

민주당 지지자 ‘미국인’ 로버트 레드퍼드가 바라본 미국의 현재

9·11 이후 할리우드는 끊임없이 자기 상처를 들여다본다. 수많은 영화들의 그러한 시도는, 그러나 대체로 공포와 피해의식에서 머뭇거릴 뿐이었다. 더이상 예견도, 포착도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무시무시한 불안만이 팽배하다. 민주당 지지자인 로버트 레드퍼드의 <로스트 라이언즈>는 9·11 이후, 명분없는 전쟁으로 무너져가는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조금은 다른, 어쩌면 조금은 나은 영화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반부시적이기는 해도 반미국적이지는 않다는 점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한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최선을 다해 성찰하지만, 국가라는 모호한 실체 앞에서는 애매하게 성찰의 끈을 놓아버린다.

영화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세 가지 이야기, 혹은 영역, 혹은 양상을 교차시킨다. 하나는 언론과 정치가 맞물린 기생의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 남의 땅에서 죽이고 죽어가는 파병된 미군들의 공간이며, 마지막 하나는 그런 사회를 무기력하게 분석하고 냉소하는 학문의 공간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 공간에서 실시간 벌어지는 일들을 번갈아 보여주며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언론과 정치가 공모하는 현실이나 대학사회의 무기력함과 이상주의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정치인은 국가, 선, 악, 자유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가장 겁없이 사용하는 자들이며, 상아탑의 교수는 휴머니스트지만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마음이 쓰이는 부분은 파병 군인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이들의 파병을 바라보는 대학교수의 시선(아마도 감독의 시선)과 파병을 선택한 청년들 자신의 시선이다. 영화에서 파병을 선택한 이들은 가난한 유색인종들이다. 그들은 국가의 모순을 잘 알고 있음에도 국가를 변화시키려면 국가를 위해 참여해야 한다고 믿으며 파병을 선택한다. 물론 이들은 ‘대학 나온 소수 인종 파병 군인’에게 세상을 바꿀 힘이 비로소 주어질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이 영화의 누구도 파병함으로써 국가의 악행에 공모하게 되는 것임을 지적하지 않는다. 감독은(교수는) 명분없는 전쟁을 반대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이들의 선택이 현실을 방관하는 백인 중산층의 냉소보다는 정의롭고 숭고한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국가가 무언가를 해주기 전에, 먼저 국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라는 명령과 얼마나 다른가? 게다가 이 얼마나 자국 중심적인 논리인가? 국가를 위하는 것이 곧 정의를 위하는 것이라는 착각. 더러운 정치와 분리된 순수한 국가에 대한 기만적 믿음. 여전히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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