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넘은 지구인들의 기억을 지배하는 종족이다. 로버트 카파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조지 무어 등과 함께 설립한 보도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은 지난 60년간 전세계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가장 빠른 손길로 문명의 발전과 퇴행, 탄생과 소멸을 담아왔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노르망디상륙작전은 로버트 카파의 사진으로, 마더 테레사 수녀의 얼굴은 라구 라이의 사진으로, 일본 미나마타병의 참상은 유진 스미스의 사진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20th C>는 그처럼 지구의 근대사를 민첩하게 담아온 매그넘의 사진들로 20세기를 정리한 사진집이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각 시대의 상징적인 사건과 인물의 초상을 보여주는 <현장에서 만난 20th C>는 어쩌면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매그넘이 다시 앞으로의 60년 동안 보도사진계의 최강집단으로 군림하기 위한 포석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시대를 기록한다는 개념에 충실한 책의 구성은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쪽마다 중요 사건을 연표로 정리했고, 사진으로 묘사된 사건과 인물에 대한 서술적인 설명, 그리고 당시의 구호와 중요 인물의 어록이 포함되어 있다. 무하마드 알리가 다부진 표정으로 렌즈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에는 “아마도 100년 뒤쯤이면, 사람들은 내가 백인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예수에 대해서도 그랬으니까”라고 했던 그의 말을, 우드스톡 공연의 현장사진에는 “반항심이 생기면 생길수록 나는 사랑을 나눈다”는 당시의 어느 낙서를 옮겨놓는 식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진의 현장성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하는 것은 곳곳에 기록된 사진작가들의 짧은 코멘트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간디가 힌두교 광신도에게 살해되기 몇분 전, 어느 사진을 보고 “죽음!”이라고 외쳤다는 사연을 전하고, 6·25 전쟁 당시 한국의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찾았던 베르너 비쇼프는 “포로들이 모두 포즈를 취하고 있어서, 이게 진정한 수용소의 생활이 맞는지를 자문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런가 하면 체 게바라를 찍은 르네 뷔리는 “그가 논쟁에 전념하느라 포즈를 취해주지 않아 여덟통의 필름을 썼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단순히 말하자면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담아낸 것이지만, 사진이 지닌 현장의 감각은 도식화된 카테고리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20th C>는 프랑스 알뱅-미셸 출판사의 주도 아래 전세계 23개국의 출판편집자들이 사진을 선별해 만들고 동시에 출간하는 책이다. 편집진은 무엇보다 제3세계의 역사가 빠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고, 한장의 사진이 다른 시공간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개연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에 걸맞게 <현장에서 만난 20th C>는 사진작가의 존재감보다는 역사를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전달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책으로 만들어졌다. 사진마니아들보다는 역사 선생님의 책꽂이에 어울리는 사진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