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둘이라고 놀리잖아요.” 아들 짜야는 엄마의 두 번째 결혼식장에서 싸움을 벌이는 이유를 그렇게 말한다. 투야(위난)는 두 번째 결혼 중인데, 가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팔려가고 있는 것이며 식장은 난리법석이다. 결국 투야는 홀로 숨어들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영화는 지금껏 눈물을 흘리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투야의 행적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한다. 우물을 파다가 허리 불구가 된 남편 바터(바터)를 대신해 살림을 책임지는 것은 투야였지만 그녀조차 조금만 더 고된 노동을 했다가는 남편처럼 될 처지다. 투야에게는 친구가 한명 있는데, 바람기 많은 아내 때문에 늘 골치를 썩이는 인근의 젊은 유부남 썬거(썬거)다. 그들 사이에 우정으로 위장된 사랑의 감정이 오가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럼에도 투야는 집안의 생계를 위해 남편과 자식을 함께 데리고 살아줄 누군가와 결혼하겠다는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다. 마침내 원유를 발견해 떼부자가 된 투야의 어릴 적 동창이 조건을 받아들여 투야와 그 식솔들을 도시로 데려가지만, 투야가 그와 첫날밤을 보내려고 할 때 상실감에 빠진 바터는 자살을 시도하고 다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썬거가 투야에게 아내와 이혼하고 돌아올 테니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약속한 썬거는 오지 않고 투야는 썬거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
내몽골의 초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투야의 결혼>은 이렇게 기이하고도 슬픈 이야기다.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한 뒤 <월식>(1999)으로 데뷔한 감독 왕취안안은 자신의 전작 <월식>, <에르메이의 이야기>(2003)에서 함께했던 여배우 위난을 주인공으로 하여 <투야의 결혼>을 찍었고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내 어머니는 이 영화가 촬영된 곳 근처에서 태어나셨다. 그래서 난 언제나 몽골인들과 그들의 삶, 그들의 음악이 애틋하고 사랑스럽다”며 “이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삶을 기록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감독은 말한다. 여배우 위난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3개월 동안 몽골 현지인들과 동거동락하며 그들의 생활방식을 배우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편 감독 왕취안안은 실제로도 극중 이름과 같은 바터와 썬거라는 두명의 몽골 유목민을 뽑아 남자주인공을 맡김으로써 현장성에 대한 반영을 꾀했다. 때때로 아마추어적인 그들의 연기가 이 영화에 힘을 불어넣을 때가 있다. 하지만, <투야의 결혼>은 결국 여주인공의 주목할 만한 역할로 인해 확실히 장이모가 연출하고 공리가 주연한 <귀주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는데, 시골의 촌부로 등장한 여주인공의 외양과 캐릭터가 그런 느낌을 강하게 풍기며, 특히 ‘가족을 대표하는 가난한 여인의 부조리해 보일 정도의 억척스럽고 정직한 태도를 과장하지 않고 그려내는 방식’이 그렇다.
그런데 내몽골 여인의 이 힘겨운 수난의 이야기를 볼 때 우리는 한 가지 조급한 유혹을 떨쳐야 한다.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 같이 살던 남편과 형식상의 이혼을 한 뒤 다른 남편을 다시 얻어 모두가 함께 산다는 건 어쩌면 몽골의 초원에서나 시도할 수 있는 슬프고 아이러니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도시화와 문명화 그리고 합리화에 젖은 사람들에게는 더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영화에서 어떻게 그 땅의 속성과 맞물려 창조적으로 표현되었는지 혹은 그런 투야의 사정이 어떻게 더 내밀하게 그려져 우리의 마음을 그들의 풍속 안에서 움직이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지 문화의 신기함에 대한 윤리적 포장으로 오인받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점에서 <투야의 결혼>은 영화적 사유의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 같다. 자신이 제기한 화두에 좀 게으르게 답하는 느낌이며, 상투적인 수미상관의 기법을 빌려 투야의 이야기를 손쉽게 미제로 남기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그러니 <투야의 결혼>을 ‘슬픈 책임을 짊어졌으나 정직한 한 여자에 관한 평범한 영화’라고 말하는 대신, 높이 평가받아야 할 좋은 형식의 올바른 영화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