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소설은 왜 쓸까? 진실로, 왜!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도리스 레싱은 <황금 노트북>이 최초 출간된 지 약 십년 뒤인 1971년에 서문을 추가한 <황금 노트북> 판본에서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소설에 쏟아진 수많은 말에 대한 답변인 그 글에서 레싱은 사회가 겪고 있는 대변동 속에서 여성 해방이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목표인가에 대해 말한다. 안나 울프라는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자 안나가 쓰는 이야기를 담은 <황금 노트북>은 안나와 안나를 둘러싼 세상의 균열을 의식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황금 노트북>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바라보는, 그리고 기록하는 한 여자의 의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안나는 꽤 성공한 작가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그녀가 친구 몰리와 한 방에 있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하는데, “모든 게 무너지고 있다”는 인식에 관한 관념적인 수다다. 하지만 레싱의 관심사가 단순히 여성의 해방이 아니라는 점은, ‘검은 노트’에 쓰인 이야기들을 통해 드러난다. 안나의 소설 <전쟁의 변경 지대>를 둘러싼 ‘검은 노트’의 이야기는, 인종차별 문제가 첨예한 아프리카(레싱이 25년간 살았던 대륙)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 ‘빨간 노트’에 적힌 공산당원으로 살았던 안나의 삶 등이 더해져, 이 여러 권의 노트북에 적힌 이야기들은 레싱이 비단 여성이 아닌, 억압받는 존재들의 해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황금 노트북>을 비롯한 레싱의 소설을 읽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레싱의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때로는 몇 십 페이지고 묵묵히 책장을 넘기며 독자 스스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레싱은 여성의 삶을 때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무대에서 펼쳐놓는다. 그 어디서도, 쉽지 않은 삶이다. 가장 온순하고 정상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무대에서조차도. <황금 노트북>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19호실로 가다>에서는 괜찮은 남편과 함께 네 아이를 키우는 한 여자가 자신만의 공간을 구하는 이야기다. (버지니아 울프를 읽은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을) 자신만의 ‘방’은 <황금 노트북>과 <생존자의 회고록>에서도 되풀이되는 일종의 탈출구인데, 현실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이야기의 결론은 낙관과 비관이 구분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게 마련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덕분에 레싱을 손에 들고자 하는 독자에게, 레싱의 이 말은 가장 훌륭한 독법을 제시한다. “내가 쓴 글들을 읽고 당신의 생각을 스스로 가다듬고, 자신의 삶과 경험에 견주어보는 게 어떤가요?” 의무감에서 혹은 유행이나 일반적 동향에 속한다는 이유로 당장 억지로 레싱의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적절한 시기가 온다면, 저절로 손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주의’보다 직관에 충실할 것. 레싱을 읽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