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한 국내 미공개 해외 신작들이 한꺼번에 관객을 찾는다. 올해 3회째를 맞는 KBS프리미어페스티벌이 11월4일부터 29일까지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린다. ‘동시다발&오감만족! 특별한 시네마열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영화제는 이름 그대로 국내에 아직까지 한번도 공개된 적 없는 세계 각국의 주목할 만한 신작들을 극장 및 TV를 통해 프리미어로 상영하는 자리. 올해부터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새로운 영화에 목마른 관객은 좀더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체 상영작 규모도 대폭 커졌다. 1회 때 6편, 2회 때 4편만 선보이던 예년들에 비해 올해는 무려 16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제작국가도 중국, 일본, 미국,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헝가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국적의 다채로운 안배가 눈에 띈다.
<부모님이 휴가를 떠난 해>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 1970년 멕시코월드컵의 열기가 군부 독재하에 있던 브라질의 국민들을 맹목적으로 달구던 어느 날, 젊은 부부는 10살 난 아들 마우로와 함께 상파울루로 향한다. 부부는 아들에게 자신들이 잠시 휴가를 떠날 예정이니 그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라고 말하고는 급히 그 자리를 뜬다. 그건 부모님의 ‘정치적 도피’지만 아들은 그걸 알지 못한다. 마우로가 찾아간 친할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상태. 홀로 남은 마우로는 유대인 노인과 함께 지내며 부모와의 재회를 기다린다. 두 번째 영화를 만든 카오 햄버거 감독은 극중 마우로처럼 베를린 출생에 2차대전 무렵 브라질로 이주한 유대인 아버지와 이탈리아 출신 가톨릭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휴가를 떠난 해>는 한 소년의 성장담을 브라질의 정치·사회적 공기 속에 녹여내며 역사와 현실의 화해지점을 고민한다.
역시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던 또 다른 작품 <굿바이 만델라>는 넬슨 만델라와 백인 간수간의 20년 우정 실화를 토대로 완성된 작품.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의 조셉 파인즈가 인종주의적인 가치관을 지닌 간수 역을 맡았다. 넬슨 만델라 역의 데니스 헤이스버트는 미국 TV시리즈 <24>의 첫 시즌에서 캘리포니아 출신의 흑인 대통령 후보로 비중있게 출연해 얼굴을 널리 알린 배우다.
헝가리에서 건너온 스포츠영화도 놓치면 아쉬울 듯. <영광의 아이들>은 1956년 헝가리 혁명과 같은 해 열린 멜버른올림픽을 배경으로 헝가리 수구 국가대표팀의 스타 카르치를 뒤쫓는다. 소련이 불법적으로 헝가리를 점거하자 카르치는 이에 반대하는 집회에 나서고 그곳에서 대학생 비키를 만나 애정을 느낀다.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수구팀에 복귀해야 하지만 소련 군대가 다시 헝가리를 진압하자 그는 갈등에 빠진다. 그해 멜버른올림픽에서 헝가리와 소련이 맞붙었던 수구경기는 수구경기 사상 가장 치열한 승부였다고 전해진다. 멜로와 스포츠, 가장 감동을 자아내기 수월한 두 가지 장르를 상업적으로 매끄럽게 엮어낸 크리츠티나 고다 감독은 전작인 <낫싱엘스>로 헝가리의 흥행감독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낫싱엘스>도 이번 영화제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실수로 유부남과 연애해 미혼모가 된 여성 극작가가 육아의 부담을 함께 짊어져줄 동거인을 찾아 구인광고를 내고 그중 ‘알맞은’ 남자를 골라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로맨틱코미디다. 여성감독 로리 콜리어가 만든 <셰리 베이비>는 3년 복역을 마치고 출소해 집으로 돌아온 여자 셰리가 자신의 어린 딸과 모녀의 관계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섬세한 드라마다. 개인으로서 또 엄마로서, 세상과 다시 접점을 찾아가는 여성을 그려내는 매기 질렌홀의 연기가 눈부시다. 이외에도 알제리 전투를 다룬 <친밀한 적>, 끊을 수 없는 폭력의 순환고리를 그린 <보이스 게임>, 컬링 선수의 사랑을 담은 <컬링 러브> 등이 관객을 찾는다.
변경된 상영작 정보가 있으니 일찍부터 이 영화제를 기다리고 정보를 접했던 이라면 이 점도 잊지 말고 챙기기 바란다. 처음 상영작 리스트에 포함돼 있던 두편이 교체됐다. 리양 감독의 중국영화 <맹산>과 헝가리 스포츠영화 <화이트 팜>이 상영작에서 제외되고 동성애를 소재로 한 스페인영화 <다크 블루 올모스트 블랙>과 방황하는 청춘들을 그린 벨기 영화 <드러머>가 추가됐다. 이 영화제는 상영 방식도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해 재치있게 꾸린다. 11월4~14일까지의 상영기간 중 인기있었던 작품들을 모아 11월17~21일에 재상영하고, 11월25~29일까지 5일간은 1~3회의 상영작을 모두 엮어 축제를 마무리한다. 당신의 한‘표’가 영화제를 더욱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