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서 더욱 거침없는 상상력을 자랑한다. 국내 유일의 경쟁 단편영화제인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AISFF 2007)가 5회째를 맞아 11월1일부터 6일까지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다. 지난해와 같이 ‘R. U. Short?’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AISFF의 작품 수는 총 89편. 신작 단편을 상영하는 국제경쟁부문에는 30개국 57편, 비경쟁부문인 특별프로그램에는 32편의 작품을 각각 불러모았다. 전체 상영작만 놓고 보면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출품작이 예년의 2배가량인 1381편으로 크게 늘어난 비경쟁부문은 물론 다르덴 형제, 월터 살레스, 즈비그뉴 립친스키 등 쟁쟁한 감독들의 작품을 포함한 특별프로그램 역시 한결 엄선된 느낌을 풍긴다. 주제와 상관없이 8개 섹션으로 나뉜 국제경쟁부문과 달리 특별프로그램은 특정한 키워드 아래 5개 섹션으로 나뉜다. ‘감독열전: 시네마 올드 앤 뉴’가 감각적인 신예 감독들의 작품에 관록있는 거장들의 작품까지 덧붙여 선보인다면, ‘테마단편전: 음악과 단편영화’는 음악과 긴밀히 조응하고 호흡하는 작품들을 가려낸 섹션. 이외에도 ‘믹스플래닛: 안녕, 낯선 이여’에선 전세계 다채로운 문화를 맛보게 할 이국적인 영화를, ‘아시프 플러스’에선 재기발랄한 영화를 내놓아 주목받은 안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의 초기 단편 3편을, ‘플레이 잇 어게인, 아시프!’에선 지난 AISFF에서 인기를 끈 화제작을 모자람없이 즐길 수 있다.
경쟁영화제를 지향하는 만큼 먼저 눈이 가는 섹션은 좀더 넉넉한 라인업을 갖춘 국제경쟁부문이다. 여러 편의 국제영화제 수상작이 포진해 있지만 특히 독일 오버하우젠단편영화제에서 독일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아스트리드 리저 감독의 <포유동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영화다. 젖가슴을 탐닉하듯 빵 반죽에 얼굴을 비벼대는 남자, 사자처럼 남자를 물고 기어가는 여자 등 동물의 행동을 떠올리게 할만한 이미지로 가득한 이 영화는 포유동물이 양육자를 떠나면서 독립적인 삶을 이어가듯 남자가 어머니의 부엌을 빠져나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칸영화제 단편영화부문에 초청된 오스버트 파커 감독의 <필름 누아르>는 실사영화, 애니메이션, 사진을 편집해 완성한 독특한 영상을 선보이는 작품이다. 뛰어난 편집, 촬영 기술과 극의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는 음악 등이 감독의 재능을 짐작게 한다. 부다페스트 혁명 중 헝가리 소년과 러시아 병사의 만남을 긴박하게 그린 안드라스 노박 감독의 <사이렌>은 미려한 화면과 감동적인 결말로 관객의 마음을 훈훈하게 달굴 만한 작품. 케이크를 사고자 어머니에게 돈을 얻어낸 팔레스타인 소년을 뒤쫓는 <소원>, 엘비스라는 소년이 이웃에게 잠시 몸을 의탁한 뒤 겪는 사건을 담은 <엘비스가 왔을 때>, 아내와 딸을 방기한 남자가 16년 만에 다시 가족을 찾는다는 내용의 <만남>, 안개로 둘러싸인 마을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안개> 등도 놓쳐서는 안 될 영화들이다.
이름있는 감독의 작품을 만나는 기쁨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올해 AISFF에서 ‘감독열전: 시네마 올드 앤 뉴’는 특히 주목해야 할 섹션. 다르덴 형제의 초기 단편 <세상을 달리는 사나이>(1987)는 TV 방송연출자인 존이 연인 소피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더듬는 반면, 월터 살레스 감독의 흑백다큐멘터리 <소코로 노브레의 편지>(1995)는 조각가와 죄수의 우정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조금 더 진중한 삶의 교훈을 전달한다. 잠정적으로 이별했으나 다시 애정을 느끼는 한 부부를 그린 프루트 챈 감독의 <시안 이야기>(2006)는 고대 군인의 테라코타상을 등장시키거나 등골이 서늘한 반전을 심어놓아 다소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 반면 금붕어가 민물에서 죽어나가자 이를 살리고자 분투하는 청년 이야기인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걸프>(2001)는 상영작 중 가장 큰 웃음을 자아낼 영화이지 싶다. 비트 강한 음악과 재치있는 편집, 속도감있는 극의 진행이 돋보이는 소품이다. 톰 티크베어 감독의 <에필로그>, 신동일 감독의 <신성가족>도 감독열전에서 상영하는 수작들이다. 한편 실험적인 영상을 탐험해온 작가답게 즈비그뉴 립친스키 감독의 <탱고>와 <이매진>은 매혹적인 이미지로 넘쳐난다. <탱고>가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인물을 폐쇄된 공간 속에 하나씩 늘려간다면, <이매진>은 카메라를 수평으로 이동시키면서 인간사, 그리고 시공간의 변화를 조금 다른 형태로 고민한다. <이매진>은 존 레넌의 음악 <이매진>의 뮤직비디오로 제작됐다.
영화제 기간 내 개막식과 국제경쟁부문 수상작을 발표하는 시상식 외에도 단편영화인의 밤, ‘단편영화제작시 음악 사용 클리닉’이라는 주제를 내건 시네마토크 등 각종 행사와 함께 감독과의 대화도 마련될 예정이다. 상영시간표 및 자세한 정보는 AISFF 홈페이지(www.aisff.org)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