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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초대받지 못한 자
장미 2007-11-02

전주도, 부천도 아닌 부산이라니. 부산영화제 데일리팀에 낙점됐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지난해 부산을 다녀온 동기 기자는 재미있었다고 위로 비슷한 말을 건넸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처음 이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데일리 일이 차츰 손에 익던 셋쨋날, 마침내 첫 인터뷰가 잡혔다. <톤도 사람들>의 짐 리비란 감독을 만나라는 지령이었다. 이제야 리포트 기사에서 멀어지는구나, 산뜻한 정신으로 인터뷰를 준비했건만 시작부터 신통치 않았다. 인터뷰 룸을 잘못 전달받아 사진기자가 다른 층에서 헤매는가 하면 인터뷰는 룸에서 하되 사진은 호텔 정원에서 찍겠다는 말에 영화제 스탭들이 반대하고 나섰던 것. 하지만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인터뷰이의 지각이었다. 스탭들이 열심히 전화를 돌렸지만 이미 호텔을 나섰다는 전갈만이 돌아올 뿐 20분이 지나도록 그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었다. 이후 일정을 걱정하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데 극적으로 그가 등장했다. 두손을 모아쥐고 “I’m sorry!”를 외치며.

이때다 싶어 그를 끌고 해운대 해변으로 나왔다. 같은 장소에서 10분 뒤 다른 인터뷰가 있을 예정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둘러댔지만 볕 좋은 밖에서 사진을 찍게 된 사진기자는 신이 난 눈치였다. 거듭 사과하던 리비란 감독이 다급히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길에서 어제 제 영화를 본 사람들을 만났어요. 같이 사진 찍자고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초가을 태양은 예상 외로 뜨거웠다. 짧은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내겐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눈총이 더 따가웠다. 무척 열성적이었던 리비란 감독은 그러나 언어의 차이를 뛰어넘는 유머감각의 소유자였다. “나는 <톤도 사람들>의 배경인 톤도에서 자랐어요. 놀랍다고요? 거긴 갱만이 아니라 온갖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어요. 네, 그곳 소년들을 직접 캐스팅해서 찍었죠. 스타가 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더니 많은 이들이 오디션에 응시하던데요. 내 영화에 출연한 친구들은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지금은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해요. 여기 해변을 보니 칸영화제에 온 것 같군요. 하하.”

입심 좋은 감독과의 유쾌한 대화. 그렇게 무리없이 헤어지기 직전 그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원래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와 함께 올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한국대사관에서 비자를 안 내주더라고요. 네가 누군지 어떻게 아냐고. 불법체류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고. 그 친구가 상처를 많이 입었어요.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깡패가 돼야 한다고. 그래야 사람들이 존경심을 보인다고. 우리는 예술가예요. 그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 중 몇몇은 대학까지 갔고요. 영화제의 선한 의도와 달리 부산에 오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다음 인터뷰 장소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의 말을 기사에 인용하거나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자주 그 말을 옮기는 게 아닐까. 앞으로도 꽤 오래 첫 데일리를 기억하면서 리비란 감독과의 인터뷰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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