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참혹한 모습으로 살해당한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라고 불렸던 그녀, 아테나의 죽음 뒤, 한 사람이 그녀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을 만나 그녀에 대한 증언을 받는다. 아테나는 셰린 칼릴이었고, 루마니아 집시의 딸이었고, 레바논 사업가의 양녀였고,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고, 한 남자의 아내였고, 한 아이의 어머니였고… 마녀라고 불렸다. 완전하고 끝없는 쾌락을 모색하는 길에서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는 인물, 마녀.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아테나의 죽음 뒤 그녀를 알았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그녀의 삶을 재구성한다. 하지만 아테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녀의 삶은 무언가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방황하고 사랑하는 일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고아였다가, 독실한 믿음을 가졌던 성당에서 영성체를 모실 수 없는 이혼녀가 되었다가, 가난을 딛고 부유한 사업가가 되었다가, 마침내는 영적 지도자로 거듭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과 지탄을 동시에 받을 수밖에 없다. 극중 인물의 입을 빌리면 “아테나의 가장 큰 문제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22세기 여자라는 것이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최신작인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저자 자신의 다양한 관심사와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삶의 궤적을 집적해놓은 듯하다. 어린 시절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젊은 날을 히피로 살았으며, 반정부 성향의 만화잡지를 발행하다 투옥되기도 했던 파울로 코엘료의 삶은 아테나의 그것과 겹쳐진다. 그는 끝내 설명될 수 없는 어떤 힘에 대한 탐구 성과를 소설로 완성해냈다. 결코 손에 잡히지 않으며, 영원한 공백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신비에 대해. “때로 나는 마녀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결같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마녀’라는 말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마녀란, 직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여성, 자신을 둘러싼 것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성,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이다. <포르토벨로의 마녀>에서 나는 이 시대의 새로운 마녀들이 직면하고 있는 편견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아테나는 무기를 발명했고 다양한 기술을 상징했던 처녀성을 지킨 여신이지만, 국가의 수호신이기 때문에 다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소설 속 아테나는 그 모두의 얼굴을 고루 갖고 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전쟁터에서 자랐어. 아직 살아 있고. 그러니 누가 나를 보호해줄 필요는 없어”라는 어린 아테나의 말은 성녀가 되고자 하는 명백한 포부를 그녀만의 방식으로 성취하는 일의 전조가 된다. 아테나가 마녀로 불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왜 신의 여성성은 속박되어왔는가 하는 작가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