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활동 중인 감독 중 데카당스 미학의 계승자를 꼽으라면 단연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돋보인다. 죽은 비스콘티가 부활한 듯 그는 퇴폐적이고 타락한 질병의 세상에서 아름다움의 정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몽상과 유령, 질병과 죽음의 검은 세상에서 그의 미학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모아 상영하는 알렉산더 소쿠로프 특별전이 10월30일부터 11월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문의: www.cinemathequeseoul.org).
러시아의 무명감독이었던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서방에 이름을 알리게 된 데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향이 컸다. 타르코프스키는 소쿠로프가 70년대에 국립영화학교(VGIK)에 다닐 때 그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소쿠로프라는 젊은 감독이 있다. 거장이 될 재목이다. 정부의 탄압을 받아 정상적인 활동을 못한다. 서방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르코프스키의 입을 통해 재목으로 지목된 젊은 감독 소쿠로프(1951~)는 서방 영화인들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며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와 소쿠로프
당시 타르코프스키는 서유럽에서 <향수>(1983), <희생>(1986)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러시아영화의 품격을 유감없이 발휘할 때다. 그가 아끼는 제자 소쿠로프도 서방세계로 데려와야 한다는 움직임이 당연히 제기됐다. 그런데 1986년 타르코프스키가 갑자기 죽고, 소쿠로프는 서서히 잊혀져가는 듯했다.
소련 정부가 무너지자 소쿠로프는 다시 기억됐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됐으니 그도 스승처럼 서구로 옮겨 활발한 작업을 해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소쿠로프는 서구로 이주하는 대신 러시아에 남아 자신의 영화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세기의 역사가 뒤바뀌는 숨막히는 현장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만든 다큐멘터리가 <러시아 엘레지>(1993)이다. 죽어가는 조국에 대한 감독의 애가(哀歌)다. 그는 에세이풍의 다큐멘터리에 모두 ‘엘레지’라는 제목을 붙여 작업했는데, <러시아 엘레지>는 그중 하나이자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볼 수 있었던 그의 첫 작품이었다.
영화는 시커먼 화면으로 시작하는데,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숨소리만 들린다. 소쿠로프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은 알겠지만 이는 감독의 클리셰 중 하나다. 그의 영화는 모든 죽어가는 존재에 대한 명상에 다름 아니고, 그래서 죽는 자의 단말마는 그의 영화에서 자주 듣게 되는 소리다. 죽어가는 존재 러시아, 감독은 조국의 광활한 대지에 안타까움의 애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엘레지>가 공개된 뒤 유럽 영화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소쿠로프 열풍이 불었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1974)에서 본 듯한 광대한 들판과 바람에 몸을 눕히는 풀밭 등 러시아영화 특유의 풍경화도 매력적이었다. 유럽의 시네마테크들에서 소쿠로프가 그동안 공개하지 못했던 ‘엘레지’들이 속속 소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 자연과 죽음의 대조
소쿠로프의 명성이 대중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은 <어머니와 아들>(1997)이다. <러시아 엘레지>에서도 나타났지만,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얼마나 서양미술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며, 특히 그의 화면이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풍경화와 닮았는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좀 과장하자면 영화의 장면은 모두 서양미술의 간접적인 인용들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러시아의 바다가 보이는 어느 시골에서 아들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다. 이것뿐이다. 이런 간단한 이야기로 비극의 고통을 전달하는 것은 숭고의 경지에 이른 영화의 풍경화 덕분이다. 프리드리히처럼 소쿠로프의 영화에 일관되게 흐르는 테마는 죽음에 대한 명상인데, 그 명상은 죽음을 상징하는 그림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것이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아들의 고통을 자연이 대신 묘사한다. 감독 특유의 길고 긴 롱테이크의 화면에서 아들은 깃털처럼 가벼워진 어머니를 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어 애간장을 태운다. 영국 화가 존 에버릿 밀레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소녀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 <눈 먼 소녀>(1856)처럼 대지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아들의 가슴에 안긴 어머니는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며 죽음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연과 죽음의 대조가 비극의 슬픔을 더욱 배가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발표된 뒤 소쿠로프는 타르코프스키의 후계자로, 또는 예술영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소개되며 칸영화제의 단골손님이 된다. 20세기 정치가 4인을 선정, 4부작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됐고, 히틀러를 대상으로 한 첫 작품 <몰로흐>(1999)가 공개되며 감독의 영화세계는 더욱 폭넓게 소통됐다. 그가 히틀러의 삶을 다룬다고 해서 논란의 대상이 된 <몰로흐>에서 다시 확인됐지만, 감독이 관심을 두는 것은 권력가 히틀러가 아니라 ‘죽음 앞의 인간’ 히틀러였다. 영화는 정치가 아니라, 여전히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후 레닌을 다룬 <황소자리>(2000), 히로히토를 다룬 <더 선>(2004)까지 3부작이 발표됐는데, 세 작품 모두 감독의 오래된 주제인 ‘죽음’을 명상하는 에세이들이다.
2001년 그는 <여행 엘레지>를 발표하며 자신의 예술창작의 뿌리가 미술에 있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몽유하는 듯한 어느 여행자가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꿈같은 내용이다. 방랑자는 자기가 꿈속에 있는지 현실에 있는지 전혀 분간하지 못하며, 벚꽃이 휘날리는 밤을 배경으로 취한 듯 걷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은 계속 미술관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방랑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단지 그의 1인칭 독백만 들을 수 있다. 이러니 방랑자는 영락없는 유령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육신이 없는 목소리는 암스테르담의 미술관에서 어느 풍경화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죽은 공간 미술관에서, 죽은 자의 목소리가, 죽음의 세계인 그림 속으로 들어가겠다니, 이는 바로 소쿠로프 자신의 죽음에 대한 데카당스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죽음은 실존의 고통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미학의 대상으로만 위치짓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어머니와 아들>은 물론이고, 이의 후속편 격인 <아버지와 아들>(2003)에서도 반복된다.
<러시아 방주>, ‘One Single Tracking Shot’의 놀라운 테크닉
미술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최고치에 이른 작품이 <러시아 방주>(2002)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감독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도 가장 성공했다. 형식은 <여행 엘레지>와 비슷하다. 1인칭 독백이 들리고,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보지 못한다. 단 한 사람 이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18세기 초에 활약했던 프랑스 귀족이다.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이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들어서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영화는 이 궁전에 온갖 복장과 가면으로 치장한 화려한 귀족들이 함께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궁전 내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고, 우리는 당시의 공연예술의 한 단면과 이를 즐기는 러시아 귀족들의 태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대략 15분쯤 되는데, 이 모든 도입부의 시퀀스가 단 하나의 숏으로 구성돼 있다. 소쿠로프의 영화에 워낙 롱테이크가 많아, ‘이 정도는 보통이지’라고 생각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 방주>는 99분 전체가 단 하나의 컷으로 구성된, 원숏 원신(One Shot One Scene) 영화다. 덧붙여 끝없이 트래킹 장면이 이어진다. 원숏 트래킹이라는 전무후무한 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처음 소개될 때, 이런 기술적인 부분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One Single Tracking Shot’, 영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입이 떡 벌어지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겨울궁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귀족과 목소리’는 계속 돌아다니며 그림을 구경하고 품평하는데, 이 모든 액션이 단 한번의 컷도 없이 진행된다. 이들은 무려 33개의 방을 이동하며 그림을 본다. 또 중간에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3번 듣는다. 물론 라이브다. 수천명의 배우들이 주인공들의 주위를 지나친다. 이런 휘황찬란한 기술을 보기에 관객은 그만 넋이 빠지는 것이다.
사실 기술적인 면이 지나치다보니 역설적이게도 <러시아 방주>는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감이 있다. 이 영화도 소쿠로프 특유의 ‘죽음에 대한 명상’이다. 그런데 그런 명상에 빠지기 이전에 몽타주없이 굴러가는 필름의 마력에 휘둘리다보니 지금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중심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러시아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
시간과 공간의 통일을 의도적으로 깨는 것도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이다. 영화는 18세기 말로 시작했지만, 곧바로 현대의 에르미타주와 뒤섞인다. ‘귀족과 목소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러시아의 역사를 여행한다. 이들이 ‘이탈리아 화가의 방’에서 그림 품평을 할 때면 러시아의 현대인들이 나타나 함께 토론을 벌이는 식이다. 그러고보니 주위는 어느덧 현대의 관광객들이 걸작들 앞에서 그림 구경하기에 바쁘다. 루벤스, 반다이크, 엘 그레코,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그림들은 물론이고, 카노바의 우윳빛 조각들, 그리고 이름없는 장인들이 만든 가구와 그릇들까지, 겨울궁전의 그 모든 유품들이 감탄의 대상으로 눈앞에 전개된다.
소쿠로프에게 겨울궁전은 노아가 살아가기 위해 만든 방주에 다름 아니다. 인류의 생존을 건 방주, 곧 겨울궁전이 있기에 인류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역설이다. 그 궁전에는 모든 죽음의 흔적들이 보존돼 있는데, 바로 그런 죽음들을 보존함으로써 인류는 생존해간다는 것이다. 그 복판에 에르미타주가 있다는 러시아의 자부심이 내재돼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