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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영화 명장면] 영화 언어만으로 직조한 100%의 긴장감
오정연 2007-10-25

<본 얼티메이텀>

대규모 폭파신도 일당백의 총격신도 소용없다. 갈수록 진화하는 특수장비로 찍어내고 CG로 보완한 카체이싱은 평준화됐고, 새로운 무술이 갑자기 생겨나 격투신의 신기원을 이루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 2002년 <본 아이덴티티>로 첫선을 보인, 할리우드 역사상 보기 드물게 사실적이고 근면한 첩보물로 기록될 본 시리즈의 액션 스타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제이슨 본의 여정을 닮았다. 본이 첨단무기는커녕 제대로 된 권총도 없이 두발로 뛰어다니고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동안, 본 시리즈 세편의 촬영감독인 올리버 우드와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을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 역시 오직 영화 언어만으로 가능한 고유한 액션을 고민했다.

워털루역과 탕헤르의 시장에서 벌어지는 두번의 추격신. 총성도 없고, 자동차 충돌음도 없다. 몸과 몸이 맞부딪히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런데 관객은 숨을 죽인다. 우선 워털루역. 제이슨의 목표는 기자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는 기자를 보호하면서 자신이 노출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요원들의 행보와 CCTV의 움직임을 수시로 체크하면서 본은 기자에게 상세한 지시를 내린다. 주위를 살피는 본의 클로즈업, CCTV 혹은 군중 속에 숨은 요원의 원경, 허둥대는 기자의 불안한 클로즈업. 대략 세 종류의 숏이 거친 패닝과 주밍, 점프컷으로 연결되며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탕헤르 액션신은 좀더 복잡하다. 본은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오해하는 모로코 경찰을 따돌리면서 암살자로부터 쫓기는 니키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녀에게 향해야 한다. 좁은 골목 사이를 헤치는 니키와 암살자 사이에 쉴새없이 시선이 오가고, 따닥따닥 붙어 있는 낮은 건물 옥상을 건너뛰는 본과 경찰은 뜀박질에 열중한다. 눈을 깜빡이는 동안에 컷이 넘어가버릴 듯 정신없지만, 정작 관객이 그 복잡한 거리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아니, 애초에 전체를 조감하듯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작진의 목표는 애초에 쫓고 쫓기는 자의 방향만 일치시키는 것 정도였을 것이다. 인물들의 가쁜 호흡을 흉내낸 점프컷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시선을 정교하게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시야를 확보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제이슨 본 한 사람이면 족하다. 니키를 찾기 위해 본이 옥상 한켠에 멈추어서는 순간. 불안한 클로즈업과 빽빽한 풀숏이 이어지는 숨가쁜 액션의 와중에 우리는 숨을 내쉴 기회를 얻는다.

그린그래스의 합류 이전과 이후 본의 액션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본의 액션을 바라보는 방식은 큰 변화를 겪었다. 당연히도 <블러디 선데이>와 <플라이트 93> 등 그의 전작의 비주얼에 본은 크게 빚지고 있는데, 그린그래스가 액션을 완성한 가장 주된 무기는 시점숏과 편집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오랫동안 영화가 영화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근본이다. 재밌는 것은 본의 액션 스타일이 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몇 십년 전이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거라는 사실. 늘 2대 이상, 최대 5대까지 동원하여 동일한 상황을 다른 각도, 다른 앵글로 촬영한 이런 종류의 영화는 편집실에서 다시 한번 만들어진다. 늘 인물을 쫓다보니 카메라 오퍼레이터의 정교한 프레이밍이 애당초 불가능한데, DI과정은 촬영감독에게 재프레이밍의 기회를 선사한다. 복잡한 장소만 골라서 인원을 통제하지 않고 촬영을 진행하는 동안 제대로 조명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역시 DI 덕분에 화면의 밝기를 후반작업에서 보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음악. 인물이 장소를 바꾸고, 숨을 고르고, 건물 사이를 훌쩍 뛰어넘을 때마다 동일한 시퀀스 안에서 국면은 전환된다. 이때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은 사실 음악이다. 편집본에 맞추어 정교하게 음악이 들고나는 지점을 프레임 단위로 설정해야 하고, 섬세한 믹싱을 거쳐야 한다. 모든 지점에서 디지털 후반작업 공정이 필수적이다. 신기한 CG 캐릭터와 방대한 스펙터클이 디지털영화의 전부가 아니란 얘기다. 본 시리즈의 얼핏 소박한 액션 스타일은 지금 이 시점에나 가능해진 새로운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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