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문학동네 펴냄 <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문학동네 펴냄
가을은 책을 읽기에 최악의 계절이다. 지하철에서도 휴대폰으로 TV를 볼 수 있고, 집에서는 WOW를 할 수 있으며, 정 할 일이 없으면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만 해도 즐거운 계절이니. 하지만 올 가을만큼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멋진 한국 소설들이 최근 연달아 서점에 등장했다. 그중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서로 꽤나 닮지 않은 소설들이다. 전자는 89학번인 화자 ‘나’를 통해 그의 세대를 여러 개인사를 통해 복원한다. 후자는 ‘지금, 여기’가 아닌 어딘가, 그러니까 마리사와 토마스, 그리고 존이 등장하는 다소 이색적인 소설들을 ‘지금, 여기’를 그리는 소설들과 함께 묶어낸 소설집이다.
최근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화자 ‘나’는 “처음부터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가 주인공이라고 한정지을 수 없는 한 세대의 초상이 개개인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1991년에서 92년의 한국을 살았던 개인을 그려 보이면서도, 최루탄 냄새 매캐한 격렬했던 길거리로 독자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 시간을 회고하며 “인생을 두번” 산다. 실제로 살았던 삶을 회고담으로 다시 한번 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다시 살아지고, 서로의 삶이 겹쳐진다. 386으로 명명된 세대에게도, 그 뒤의 세대에게도 독특한 방식으로 그 시기의 상처를 환기시킨다.
천명관의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첫 작품부터 엉뚱하다. ‘프랭크와 나’라는 단편에서, 프랭크는 한국의 평범한 주부 ‘나’의 남편의 사촌형이다. ‘나’의 남편이 토론토에 사는 프랭크를 만나 랍스터 수입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하고 떠난 뒤로, 남편과 프랭크의 주변에서는 이상한 일들만 터진다. 프랭크의 동거녀 콘수엘로가 칠레 남자와 눈이 맞아 밴쿠버로 도망을 가고, 프랭크가 두들겨팬 흑인의 사촌형은 LA에서 유명한 갱이라 한동안 도망자로 지내야 한다는 식이다. 사건은 눈덩이처럼 빠른 속도로 커지며 ‘나’를 압박한다. ‘프랑스혁명사-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은 <프랑스혁명사>를 쓴 19세기 영국 사상가 토머스 칼라일과 존 스튜어트 밀을 등장시켜 엉뚱한 상상력을 전개시킨다. 한국 이야기도 아니고 외국 이야기도 아닌, 그냥 무국적의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라는 느낌의 ‘프랭크와 나’나 ‘더 멋진 인생을 위해’ 같은 단편들도 나름의 씹는 맛이 있지만, 사건이 불꽃놀이처럼 작렬하다 조용히 사라지는 그 이야기들보다는 ‘13홀’이나 ‘二十 歲’처럼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덤덤한 성장물쪽의 뒷맛이 더 좋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는 천명관의 첫 장편 <고래>의 몰아치는 속도감을 즐겼던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