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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개인적인 전쟁 <브레이브 원>
김혜리 2007-10-10

조디 포스터가 벌이는 범죄와의 개인적인 전쟁

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은, 세상에서 가장 안온하고 아름다운 도시 뉴욕을 예찬하는 라디오 DJ다. 또 그녀는 연인 데이비드(나빈 앤드루스)와 결혼을 앞둔 행복의 정점에 서 있다. <브레이브 원>의 첫 소절은 넘치게 감미로워, 참혹한 비극의 전조임을 대번 눈치챌 수 있다. 청첩장을 고르던 날, 에리카와 데이비드는 센트럴 파크로 산책을 나섰다가 불한당 패거리들에게 이유없이 습격당한다. 무자비한 구타는, 데이비드의 숨을 끊고 에리카의 육신을 짓이겨놓는다. 요즘 뉴욕의 치안 상태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단지 기념하고 자랑하기 위해 범행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불량배들의 행태는, 이 영화가 요즘 이야기임을 강변한다. 3주간의 혼수상태에서 에리카가 깨어나면, 영화는 곧장 그녀의 주관에 밀착한다. 겨우 회복한 에리카가 거리로 나서면 카메라는 휘우뚱 기울고 음향은 거슬리게 과장된다. 그녀의 눈에 이제 모든 행인은 잠재적 야수다.

닐 조던 감독의 관심사는 애인 죽인 범인을 색출하는 추적 과정이 아니라, 깊이 사랑하던 공간과 인간을 두려워하게 된 인간의 내면에 일어나는 급격한 변질이다. 두려움은 약자들만의 것이라 믿었던 자유주의자 뉴요커의 세계는 무너진다. 권총을 입수한 에리카는 자기를 해코지한 자에 대한 복수보다 불특정 범죄를 응징하는 흑기사 역할에 몰입한다. 하지만 현실성을 슬쩍 무시하는 <브레이브 원>의 전개는 갈수록 긴장을 떨어뜨린다. 에리카의 ‘응징’은 언제나 피해자 외에는 목격자가 없는 인적 드문 곳에서 일어나서 흡사 그녀의 꿈처럼 보인다. 고독한 에리카의 정신적 동행자는 뜻밖에도 그녀가 저지른 살인을 수사하는 사려 깊은 형사 머서(테렌스 하워드).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악인을 바라보며 지쳐가는 머서와 에리카 사이에는, 쫓고 쫓기는 입장에 마땅한 긴장 대신 로맨틱한 친밀감이 흐른다.

<브레이브 원>에서 여전사 액션의 쾌감을 바란다면 번지를 잘못 찾은 기대다. 여기서 에리카의 살인은 정신적 외상을 치료하는 테라피로 규정된다. 범죄 피해자 다수가 삶에 복귀하지 못한다는 머서 형사의 대사는 에리카가 무엇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지 귀띔한다. 그러나 ‘재판없는 처형’이라는 발상은 영원히 위험한 덫이다. <데쓰 위시> <복수는 나의 것> <크리미널 로> 등 자력구제를 그린 영화들이 그랬듯 <브레이브 원>은 윤리적 딜레마를 건드리지만, 직관적 교감이라는 편리한 장치를 빌려 싱겁게 덫에서 빠져나온다. 액션스릴러 팬과 좀더 무거운 영화의 팬을 아우르려던 닐 조던과 조디 포스터의 노력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브레이브 원>은 도시괴담이자 매우 괴이한 도시미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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