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월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북쪽 해주 지역과 한강 하구 등 서해 바다 한 뭉텅이가 평화협력 특별지대로 공동 관리·이용·개발(부디 막개발은 안 돼요)된다. 이렇게 되면 경협 확대는 물론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가 이어진다. 남북 정상과 한두 나라 정상이 같이 만나 종전선언을 하도록 애쓴다(어느 나라인지 궁금하신 분은 이메일로 문의 바랍니다. 참고로 한반도는 지금 전쟁을 멈춘 상태이지 끝낸 상태가 아니랍니다). 남북 의회가 만나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남쪽의 보안법이나 북쪽의 노동당규약 같은 법률·제도도 정비한다(의원들이 북쪽과 대화하고 돌아와서 국보법 지키겠다고 몸싸움하는 다중인격을 보이지는 않겠지?).
지면 부족하니 요점 정리하자.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같이 닦아 이용하고, 안변·남포 등에 협력단지를 세우고, 서울~백두산을 한 시간에 오가는 직항로를 개설하고, 내년 베이징올림픽에 남북 응원단이 함께 경의선 철도를 이용해 참가하고, 이산가족은 금강산 면회소가 완성되면 상시상봉 하고, 11월에 서울에서 남북 총리회담을 열고,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하고…, 아이고, 한 보따리다. 무엇보다 남북 정상이 수시로 만나 현안을 협의하기로 했다.
정상회담 합의문답지 않게 세부실천 방안을 촘촘히 담고 있는 것은 남쪽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시행이 잘되도록 일종의 ‘후진 방지턱’을 만드느라 그랬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선언이 실천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선언에 그치니까.
국방위원장의 패션과 포도주 원샷, 입담은 2000년 정상회담 때와 같았다. 마중 나온 것도 당연하다. 그의 말대로 “(내가) 뭐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뻗치고서 있을 필요 없”으니까.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때 특유의 무대 체질을 발휘했다. 그의 말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지난 반세기 우리 민족을 갈라놓은 장벽”에는 미술 장치 차원에서 노란 페인트칠이 돼 있었다. 위원장의 즉석 제안처럼 그냥 하루 더 놀다와도 괜찮았을 텐데. “시간 품을 들여서 허리띠 풀어놓고 식사하는” 것도 좋고, 둘이 끝말잇기나 족구 한판 혹은 위원장이 광팬이라는 이영애씨 주연의 영화 관람을 같이 해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그 광경이 생중계됐다면 남북 인민들의 정신적·심리적 긴장완화 효과가 톡톡하지 않았을까. 재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