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소소설> <괴소소설> <독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바움 펴냄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 작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나오키상을 받은 <용의자 X의 헌신>, 영화화된 <비밀> <호숫가 살인사건> <게임의 이름은 유괴>, 한국에서 영화화가 진행 중인 <백야행> 등 어느 것 하나를 대표작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지닌 장점이라면 다른 무엇보다 성실함과 진지함.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블랙유머 단편집 3권을 처음 봤을 때, ‘설마 히가시노 게이고가 웃길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변함없이 진지하다, 그래서 웃긴다.
<흑소소설>은 ‘쓴웃음 소설’을 모은 단편집이다. 유명한 문학상을 둘러싼 작가와 편집자의 동상이몽은 상의 종류가 많아 수많은 신인 작가가 태어나고 또 잊혀지는 일본의 문단 현실을 풍자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과거의 사람> <심사위원>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 책의 백미는 <신데렐라 백야행>. 저자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백야행>의 핵심을 신데렐라 이야기와 결합시켰다. 섹스에 능한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유머러스하다. <독소소설>은 ‘독기어린 웃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모아서인지 사회풍자적인 이야기가 많다. <유괴천국>은 공부에 시달리는 손자를 놀게 해주고 싶어 손자를 납치한 부유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놀고자 선택하기보다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한다. <엔젤>은 환경문제를, <메뉴얼 경찰>은 사건 해결보다는 자리보존에 목을 매는 공권력을 비난한다. <속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을 읽은 사람이라면 익숙하게 느낄 수 있을 만한, 뇌에 얽힌 이야기. ‘괴이한 웃음’을 주는 <괴소소설>은 작가가 현실에서 겪은 일을 바탕으로 뻗어낸 상상력이 웃음을 낳는다. 집값 떨어질까 시체를 다른 동네에 유기하던 게 후대에 게임으로 전승된다든가, UFO가 사실 차솥으로 변신한 너구리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압권. <동물가족>에서 가족을 각종 동물로 바라보는 소년이 맞는 파국 역시 잊기 힘들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주인공들은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다. 짠돌이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스타의 열혈팬이 되어 돈을 아끼지 않고 스스로를 치장하고, 아내들은 남편이 회사에서 불이익을 겪을까봐 역겨운 음식을 내오는 상사의 부인이 주최하는 티파티를 끊지 못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잘해보려고 바둥거릴수록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빠지는 평범한 인물들을 때로 연민에 찬 시선으로, 때로 야멸찬 시선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