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영화 관객은 1)영화를 골라, 2)표를 사고, 3)상영관에 들어가는 데 익숙해 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의례의 두 번째 부분은 널리 잊혀져가고 있다.
2000년 3월,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배급사인 UGC는 일정한 입장료만 내면 음식을 자기 양껏 골라 먹을 수 있는 뷔페 식당에 비교될 만한 무제한 정액권을 내놓았다. 한달에 18유로(대략 2만3천원)로, 이제부터 관객은 UGC의 모든 극장에서 원하는 영화를 맘껏 볼 수 있게 됐다. 입구에 자기 카드만 제시하면 된다. 할인되지 않은 정상 표값이 대략 10유로(약 1만3천원)임을 감안한 열광적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곧 유사한 방식을 제안하기 위해 경쟁 배급사인 유로-팔레스가 파리의 독립 배급자인 마르탱 카르미츠(MK2)와 연합했다. 그렇게 두개의 정액권은 프랑스 극장의 대부분을 포괄한다. 그 결과 2000년부터 영화관은 3500만 관객을 얻었다. 정액권이 23%의 관객 증가를 이뤘다고 평가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프랑스영화의 죽음’이라는 낡고 실속없는 엄살이 터져나왔다. 저주받은 정액권은 미국영화 관객만을 증가시키고 예술영화는 죽일 것이라며….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카르미츠는 불화 끝에 유로-팔레스와 계약을 끊고 UGC와 손을 잡았다. 그들의 제안은 더욱더 매력적이었다. 그들의 정액권으로 프랑스 전체 극장 중 528개, 파리의 236개 극장(전체 스크린의 44%), 그리고 심지어는 브뤼셀, 마드리드, 로마 등등 유럽의 216개 극장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듀오’ 카드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 한명을 초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정액권은 젊은이들이 처음으로 연인과 함께 매표소에서 표를 두장 사는 최고의 낭만적 순간을 죽일 가능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때맞춰 미발표된 통계 자료가 간행됐다. UGC 정액권에 가입한 20만명 가운데 13%는 주로 미국 블록버스터에 끌렸고, 51%는 이른바 ‘색깔있는’ 영화로 향했다. 그러니까 정액권은 다양성을 죽이지 않았다. 반대로 다양성을 북돋웠다. 카르미츠에 따르면, 심지어 정액권은 가장 타격을 받기 쉬운 영화들을 보호하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렇게 해서 정액권은, 작가주의 영화 역시 진짜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물론 오락물보다는 사람들을 끄는 요소가 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이하드4.0>,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등을 어김없이 찾는 블록버스터 소비자에 비해 영화 애호가는 일주일에 한번 혹은 그 이상 극장에 가는 규칙적인 관객이라는 이점을 제공한다. 그렇게 그들은 안정적인 관람층의 토대를 이룬다. 따라서 프랑스의 멀티플렉스는 점점 더 자주 블록버스터와 함께 예술영화를 상영한다. 이런 새로운 경쟁 체제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 예술영화전용관들은 정액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각 입장권은 번호가 매겨져 메이저사들은 이익금을 극장에 재투자하기로 했다(하지만 여전히 이런 실천은 투명성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볼 때 작은 동네 극장들은 아쉽게도 과거의 향수에 묻히게 될 것 같다.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는 거대한 영화관의 틀로 통합되도록 이끌린다.
이런 방식이 다른 나라로 수출될 수 있을지 혹은 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란 어렵다. 그렇기는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국경을 넘는 것이 가능한지를 자문해보며, 이 통계 자료를 꼼꼼히 헤아려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일정량의 예술영화를 상업지구의 대중영화상영관에 통합시킬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