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57년작을 리메이크한 서부극 <결단의 순간 3:10>가 비평과 흥행에 청신호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브레이브 원>에 박스오피스 1위를 내주긴 했지만 관객과 비평계의 반응이 좋아서 입소문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베니스영화제에서 브래드 피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또 하나의 서부극 <제시 제임스의 암살> 역시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등, 한때 지나간 유행이라 치부하던 서부영화는 캐릭터의 현대적인 해석을 무기로 하나둘씩 또다시 극장에서 붐을 일으킬 조짐이다.
서부극은 이미 TV쪽에서는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지 오래다. 절찬리에 방영된 <HBO>의 <데드우드>를 비롯해 지난 9월16일 열린 에미상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로버트 듀발) 및 조연상(토머스 헤이든 처치)을 휩쓴 <브로큰 트레일>에서도 TV계에서의 서부극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인들에게 ‘서부’의 시대정신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한데, 그것을 바탕으로 좀더 복잡하고 현대적인 캐릭터의 관계를 흥미롭게 창조해낸 TV작가들의 매력적인 시나리오가 지금과 같은 인기의 바탕이 됐다.
서부극에 대한 열정은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7월 <블레이드 러너>의 파이널 컷을 홍보하기 위해 샌디에이고 코미콘을 찾아온 리들리 스콧 감독은 차기 프로젝트로 좋은 서부극의 시나리오를 찾는 중이라고 밝혔고, <프랙티스>와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TV 에피소드 감독인 로드 하디 역시 첫 장편영화인 <디셈버 보이>의 개봉시 참석한 인터뷰에서 차기작으로는 서부극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서부극을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감독으로는 이미 <늑대와 춤을> 등으로 장르에 익숙한 케빈 코스트너도 있다. 대체 왜 갑자기 서부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일까.
<사이드웨이>로 커리어의 반환점을 밟았던 에미상 수상자 토머스 헤이든 처치는 지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서부극에 대한 러브콜은 “이 장르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자신들 세대의 바람”이라고 말한다. 산업의 중심이 코믹북 장르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로 옮겨가버린 지금 이 시점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나이 든 세대가 자신들에게는 특별했던 장르인 서부극의 부활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드 하디 감독은 “앞으로만 달려온 우리가 이제는 과거를 한번쯤 되짚어볼 때가 된 것이 아닐까”라고 답한다. 그는 <배틀스타 갤럭티카>로 현실적인 미래상을 다루었듯이, 단순한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재가공된 과거로서의 서부극을 꿈꾸고 있다.
서부극 장르의 매력은 끝없이 펼쳐진 서부의 이미지로부터 시작한다.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은 대자연, 그 위를 달리는 야생마들. 황량하게 펼쳐진 대지 위의 생존 법칙은 원초적이고 잔혹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분명해서 매력적이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도시가 만들어지기 전, 도시의 원형 속에서 서부극의 카메라는 거대한 자연과 그 속의 인간들이라는 대비를 통해 시적인 화면을 잡아낸다. 금요일 밤 할리우드 아크라이트 극장에서 <결단의 순간 3:10>의 상영이 끝나자 박수를 치며 만족한 듯 극장을 나서던 사람들은 젊은 관객이었다. 이 새로운 세대가 전 세대의 희망사항을 받아줄지는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