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상경길에 여차저차해서 충청도 아산·천안 외곽을 헤매게 됐다. 조금만 더 가면 산이 나오겠지, 들이 나오겠지, 물이 나오겠지 했건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아파트의 물결이었다. 산림욕장 앞에도, 민속박물관 옆에도, 절 뒷마당에도 그들은 무리지어 우뚝 서 있었다. 과수밭 옆에서 백숙을 뜯을 수 있었던 무슨 할매집류의 식당들도 다 흔적이 없어졌다. 문득 슬퍼졌다. 햇볕이 잘 들었던 마을 어귀는 상가 건물과 복합 쇼핑몰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더니, 산지사방이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실제 경상도 어디가 고향인 친구는 자기네 마을이 뽕나무 재배로 유명했는데 해외 근무 몇년 하고 돌아와보니 아파트 바다로 바뀌어버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서가 아니라 갈 곳 찾아 헤매는 건설·투기 자본이 넘실대면서이다. 불과 몇년 사이다. 시가가 있는 전주만 해도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한다는데, 그래도 짓고 또 짓는다. 막걸리 공장 터에도 군 시설에도 전주천과 삼천이 만나는 두물 머리에도 고층 아파트촌이 떡하니 들어서 있다. 과연 그래서 편한 세상이 됐을까?
경실련이 아파트 광고에 출연하는 유명 연예인들에게 “선분양에다가 거품이 잔뜩 낀 아파트를 파는 데 귀하의 명성이 이용되고 있으니 광고 출연을 신중하게 생각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한겨레>가 이들과 접촉하니, 송혜교씨만 “집값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재계약을 하지 않고 앞으로도 출연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답변했다. 답변을 한 이들은 “분양 광고가 아니라 건설회사 이미지 광고이다”(배용준), “부실 시공 아파트가 아니라면 대부업체 광고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김태희)고 했다. 답변을 하지 않은 이들은 계속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있나보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개성 공단 말고 황해도 해주에도 공단을 짓자고 제안할 모양이다. 한국토지공사 사장이 특별수행원 명단에 오른 걸 보면 또 다른 특구 구상은 정상회담의 주요 논의 내용 중 하나인 것 같다. 북쪽에 일자리가 창출되고 남쪽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북쪽 땅이 또 다른 건설·투기 자본의 놀이터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새로 건설되는 공단은 최소한의 환경영향평가를 거쳤으면 한다. 지속가능한 개발이 아니라 지탱가능한 개발이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 한반도적 과제가 아닐까. 공구리(시멘트) 코리아는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