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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백서] 문장의 상상력 스크린으로 피어나라
이다혜 김현정 2007-09-21

영화화되는 책들

‘실명’ 전염병이 도시를 뒤덮을 때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펴냄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아주 작은 순간으로부터 거대한 이야기를 끌어내곤 한다. <리스본 쟁탈전>은 교정자가 고의적인 실수로 고친 단어 하나로부터 포르투갈 역사를 다시 서술하고, <돌뗏목>에선 대지에 조그만 균열이 생겨나면서 이베리아 반도가 유럽 대륙과 분리되어 바다를 떠돈다. <눈먼 자들의 도시>도 사소한 사고 혹은 질병으로 첫걸음을 떼는 소설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던 남자가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는. 그러나 개인적인 불운으로만 보였던 질병은 빠른 속도로 도시를 점령하여 눈먼 자들이 거리를 뒤덮기에 이른다. 격리도 도피도 소용없다. 남편을 지키고자 눈이 먼 것처럼 위장하여 함께 수용소로 들어간 ‘의사의 아내’는 자신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차츰 눈먼 자들의 무리를 돌보게 된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고 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시각을 대신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촉각이나 청각이 아닌, 탐욕과 이기심이다. 눈먼 자들을 연민하는 대신 그들을 희생해서라도 자신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무자비한 행동, 폭도나 좀비처럼 거리를 약탈하는 무리.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눈먼 자들은 눈을 뜨고 있던 시절엔 경험하지 못했던 유대와 인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 옆에 있는 남자가 어떤 외모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다정한 애무를 주고받고, 곁에 있는 사람의 손길이 잃어버린 시력의 자리로 찾아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티 오브 갓>에 무정부 상태의 브라질 빈민가를 담았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또다시 혼돈의 도시를 그릴 예정이다.

평생을 뒤쫓는 30분의 죄악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문학동네 펴냄

“앞으로 삼십분 안에 브리오니는 평생 잊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범죄는 잊지 못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속죄>는 자신의 세계를 뛰어넘는 불가해한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소녀 브리오니가 삼십분에 불과했던 시간을 보상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칠십년이 넘는 그녀의 인생에서 찰나에 불과했을 삼십분. 그러나 그로 인해 흔들려버린 연인의 삶을 속죄한다는 것이 가능한지, <속죄>는 절박하게 묻는다.

소설과 극본 쓰기를 좋아하는 브리오니는 사촌 언니 롤라와 쌍둥이 자매, 의대생인 언니 세실리아, 그녀의 어릴 적 친구 로비 등에 둘러싸여 흥분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열세살인 브리오니는 세실리아와 로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두운 서재에서 그들을 목격한 브리오니는 롤라가 강간당한 사건과 자신이 보았던 광경을 연관짓고, 로비를 강간범으로 고발한다. 브리오니는 자기 때문에 전쟁터로 끌려나간 로비에게 속죄하고자 간호사로 자원하지만, 로비와 세실리아는 돌이키지 못할 이별을 운명으로 맞게 된다.

이언 매큐언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시멘트 가든>에서 근친상간과 영아살해처럼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었던 작가다. 20세기 초반 문학처럼 내밀하고 우아한 <속죄>는 그를 논란에서 구했지만, 독버섯처럼 마음을 점령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죄의식과 억압은 이 소설에도 여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죄를 짓고자 하지 않았으나,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버린 죄악. 어떤 속죄의 의식으로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나 브리오니는 자신 앞에 놓인 시간이 안타까워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삶의 끝자락에서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라고. <오만과 편견>으로 각색의 모범을 보여주었던 조 라이트가 영화로 만들었다.

51년 9개월 4일 오직 그녀만을 기다렸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민음사 펴냄(전 2권)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청년은 고열에 시달리며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하지만, 의사는 상사병과 콜레라는 증세가 똑같다며 그녀를 안심시킨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그리는 사랑은 그런 것이다. 죽음처럼 위험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끝나지 않아, 죽음이 아닌 삶을, 한계가 없는 것으로 만든다.

젊은 전신기사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전보를 전해주러 갔다가 아름답고 도도한 처녀 페르미나 다사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는 페르미나의 아버지 로렌조 다사의 눈을 피해 그녀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패배하고 만다.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군인처럼 플로렌티노 아리사를 사랑했던 페르미나 다사가 의사 후베날 우르비노와 결혼하여 안락한 중산층의 삶을 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르미나 다사가 미망인이 되기까지 51년 9개월 4일 동안 지속될 기다림이 시작된다.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던 작품이다. 환상으로 스스로를 치장하는 사랑과 연인을 품에 얻기까지 자위처럼 진행되는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에로틱한 여정이 논란을 불렀던 탓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전신기사였던 아버지와 집안의 반대를 이기고 그와 결혼했던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 첫 대목인 제레미아 드 생타무르의 죽음과 페르미나 다사가 강제로 떠나야 했던 노새여행도 마르케스가 실제로 겪었거나 부모로부터 들은 에피소드.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만들고 시리즈를 떠난 마이크 뉴웰이 영화를 연출했다.

사랑으로 조명된 독일 현대사의 아픈 기억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이레 펴냄

수십년 동안 계속되었던 사랑을 애수와 회한으로 기억해내는 소설이다. 열다섯살 먹은 소년 미하엘은 거리에서 구토를 한 자신을 돌봐준 인연으로 서른여섯 여인 한나를 만난다. 그녀가 스타킹을 신는 모습을 훔쳐보던 미하엘은 그 몸짓에 반하고, 그 손길에 이끌려, 그녀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느닷없이 찾아온 햇빛 찬란한 첫사랑의 날들. 그러나 한나는 승진 시험도 포기한 채 아무 말도 없이 미하엘을 떠나고 만다. 몇년이 지난 다음 법학을 공부하고 있던 대학생 미하엘은 전범 재판소에서 한나를 다시 만난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유대인 여죄수 수송을 책임졌던 간수 중 한명이었다.

<디 아워스>의 스티븐 달드리가 영화로 만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역사와 죄의식과 부식된 세월이 녹물처럼 얼룩져 있는 사랑 이야기다. 비밀로 간직해야만 한다는 사실마저 희열이었으나 어느 순간 부끄러움으로 변해버린 미하엘의 사랑, 권력이 강요한 범죄를 자신만의 것으로 짊어진 한나의 선택, 스스로 무덤으로 걸어간 연인들. 유대인 수십만명을 학살한 독일의 기억은 그처럼 다만 서로의 육체를 원했을 뿐인 소년과 여인 사이에 끼어들어 단 한장의 편지조차 주고받지 못하도록 깊은 심연으로 소용돌이치는 것이다. 그들에게 스물한살 나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전전(戰前)과 전후(戰後)를 가르는 몇년은 모든 것이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못하여 사랑을 놓친 미하엘은 독백한다. “나는 당시 내가 그 얼굴을 아름답게 생각했음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얼굴의 아름다움을 더이상 떠올릴 수 없다.”

오쿠다 히데오의 또 하나의 감동 코미디

<남쪽으로 튀어!> 오쿠다 히데오 지음 |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펴냄 (전 2권)

열한살 지로의 아버지는 과격한 운동권 출신. 가정방문을 온 선생님에게 대뜸 천황제에 찬성하냐는 둥 일본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둥 지로로서는 곤란한 말을 하는 데 선수다. 지로는 아나키스트라는 말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고, 그저 엉뚱한 짓을 일삼는 아버지가 부끄럽기만 하다. “학교에서 너희 머릿속에 주입하는 건 체제에 적당히 써먹을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최면술 같은 것이야. 예전에는 나라를 위해 죽어서 돌아오라고 가르쳤지. 요즘은 일을 많이 해서 세금을 많이 내라고 가르쳐” 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반항하던 지로는 부유한 외갓집 식구들의 존재를 알게 되고 도피처로 삼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고 식구들과 함께 남쪽 섬으로 이사한다. 시쳇말로 ‘개콘보다 웃긴’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는 코미디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읽는 이를 아나키스트로 물들이는 꽤나 위험한 소설이다. 지로의 아버지는 국가뿐 아니라 운동권 조직 역시 불신한다. 민주화 운동을 한 서대가 권력을 잡은 뒤 결국 자신들이 싸우던 세력과 고스란히 닮은 모습을 보여주는 한국사회에서도, 지로의 아버지 이치로의 아나키즘은 울림이 크다. 지로와 지로의 누나, 그리고 여동생이, 그저 같이 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 선택의 과정을 통해 가족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은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일본에서는 원제 <사우스바운드>로 영화화되어 올 10월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마술피리가 판권을 사 제작준비 중이다.

80km의 대장정 청춘들은 성장한다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엮음 | 북폴리오 펴냄

기발한 상상력의 작가인 온다 리쿠가 쓴 성장소설로, 그녀의 다른 소설들에서와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가 된 것은 밤을 새워 80km를 걷는 고교생활 마지막 이벤트 ‘야간보행제’. 남녀공학인 북고에서는 연례행사로 보행제가 열린다. 오전 8시부터 걷기 시작하여 다음날 오전 8시까지 학교에서 출발, 학교로 돌아오는 행사이다. 수학여행 대신이다. 친한 친구와 짝을 이루어 잡담을 나누며 하루를 꼬박 걷는 것뿐이다. 고등학교 3학년 다카코는 가슴속에 비밀의 내기 하나를 품고 보행제에 참가한다. <밤의 피크닉>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오로지 걷기만 할 뿐 사건다운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밤은 특별한 의미로 와닿고 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낮이라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이야기들이 밤을 빌려 술술 흘러나온다. 이 많은 아이들 각각의 개성과 사연이 이 소박한 걷는 밤을 빛낸다. 고등학교 3학년의 마지막 보행제는 뛰는 것도 나는 것도 아닌, 그저 한발 한발 앞으로 옮기는 순간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소박한 깨달음을 안긴다. 인생은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비몽사몽이 될 때까지 끝내 길 위에 있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학창 시절 특유의 순정을 간직한 소설. 2005년 제26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일본 서점 직원들이 선정하는 제2회 서점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타카코 역의 다베 미카코는 아역배우 출신 연기자로, 현재 일본에서 방영 중인 <타로 이야기>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 뒤에 남는다는 것

<러블리 본즈> 앨리스 세볼드 지음/ 공경희 옮김/ 북@북스 펴냄

소녀 수지 새먼이 토막살해당한다. 범인은 옆집 남자 하비로, 그가 수지를 성폭행하고 끔찍하게 죽인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범인을 뒤쫓는 행보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이야기의 초점은 오히려 그 사건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수지의 가족들에 있다. 가족을 부정하고자 일탈하는 어머니부터가 그렇다. 아버지는 수지의 죽음에 고통을 느끼면서도 범인으로 보이는 조지 하비의 정체를 추적해야 한다. 어머니마저 잃어버린 아이들과 수지의 빈자리를 견뎌내야 하는 친구들 모두에게 사랑하는 사람 ‘뒤에 남는다는 것’의 고통은 생생하다. 수지는 천국에서 그런 가족을 지켜본다. 수지는 자기 눈으로 가족들과 자기 주변인들을 관찰하고, 나아가 살면서 다 못해본 일을 지상으로 내려와 마무리한다. 수지는 친구의 몸을 빌려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완성하고, 마지막 작별의 의식을 치룬다. 끔찍한 일을 겪고 세상을 떠난 소녀가 정말 잃어버린 미래의 가능성을, 앨리스 세볼드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보여준다. “치유는 시간이 걸린 내기가 아니라 개별적인 진행이다. 슬픔을 치유하려면 어떤 의미로 무한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저자 앨리스 세볼드의 말은, 그녀 자신이 성폭행을 당한 경험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더욱 진중한 울림을 갖는다.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단순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을 사용하지 않고 인물들 개개인에 사실적인 캐릭터를 부여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라이언 고슬링, 레이첼 바이스, 수잔 서랜던이 캐스팅됐고, 내년 개봉예정이다.

어린이를 위한 닐 게이먼의 판타지 선물

<코랄린> 닐 게이먼 지음/ 데이브 매킨 그림/ 노진선 옮김/ 주니어 김영사 펴냄

닐 게이먼은 입담으로 유명한 작가다. <멋진 징조들>과 최근 개봉한 <스타더스트>의 원작소설을 쓴 그는 호러물인 <샌드맨>의 제작자이자 스토리 작가로도 유명하다. <코랄린>은 닐 게이먼이 쓴 최초의 어린이 소설. 브람 스토커상, BSFA상 등을 수상한 판타지 동화로 공포가 가족애와 어우러지는 이야기다. 소녀 코랄린은 언제나 바쁘기만 한 부모가 원망스럽다. 어느 날 코랄린은 손님방 한쪽에 있는 갈색 문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그 너머의 세계에는 코랄린의 부모를 자청하는 다른 부모가 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그 세계의 부모는 바싹 마른 몸에 눈이 단추로 되어 있고 바퀴벌레를 먹는다. 가장 섬뜩한 점은 그들이 코랄린에게는 더없이 친절하고 코랄린이 원하는 대로 해준다는 것. 이상한 점을 느낀 코랄린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오지만 진짜 부모는 사라지고 없다. 코랄린은 진짜 부모를 숨긴 게 바로 저쪽 세상의 엄마임을 알고, 그 이상한 엄마에게 대담한 게임을 제안한다. “만약 내가 게임에 지면 영원히 여기에 살면서 아줌마가 날 사랑하게 해줄게요. 아줌마가 만들어준 음식도 먹고, 행복한 가족처럼 지내는 거예요. 내 눈을 단추로 꿰매도 좋아요. 하지만 내가 이기면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죽은 아이들, 아줌마가 여기 가둬둔 모든 사람들을 전부 다 보내주세요.” 가족에 관한 동화풍 이야기가 공포와 조우하는 섬뜩한 접점을 잘 보여주는 소설. <샌드맨>의 표지 일러스트로 이미 게이먼과 작업한 바 있는 데이브 매킨의 일러스트가 오싹함을 더한다. <코랄린>은 2008년 개봉을 목표로 현재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중이다.

소년들 야구에서 인생을 보다

<배터리> 아사노 아스코 지음/ 양억관 옮김/ 해냄 펴냄

중학교 야구부를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 일본에서 800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배터리’라는 말은 투수와 포수를 일컫는 야구 용어.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는 천재적 재능의 투수 다쿠미는 중학교 입학을 앞둔 봄 방학 때 아버지의 전근으로 지방도시 닛타로 이사하게 된다.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삿날 러닝을 나간 그는 길에서 우연히 나가쿠라 고를 만나게 되는데, 고는 다쿠미의 재능을 간파하고 자신이 다쿠미와 최상의 배터리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두 소년은 야구의 파트너십을 통해 점차 우정을 쌓아간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스포츠물이 흔히 그렇듯 <배터리>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 내에서의 스릴을 갖고 있는 책이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소년이 재능을 과신해 망가지게 되는 파국을 막는 것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와 호흡을 맞추는 친구들이다. 재능이 다가 아니다. <배터리>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소년들이 진심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 그 자체다. 그렇게 “다들 너무 야구를 좋아해서 후보 선수까지 포함해서 좋은 팀”이 완성된다. 소설 속 야구장면만을 모은 <라스트 리그>와 ‘배터리 완전독본’ <배터리 스코어 보드>라는 책이 따로 출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영화뿐 아니라 만화로도 만들어진 작품. <배터리> 1권은 노마아동문예상을, 2권은 일본아동문학자협회상을, ‘<배터리> 시리즈’는 쇼각칸아동출판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의 아동문예상을 휩쓸었다. 일본 야구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작품으로, 감독 다카다 요지로는 <바람의 검 신선조>를 연출한 경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