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왕사신기>가 마침내 지난 9월10일, 브라운관 정벌에 나섰다. 3년 6개월의 제작기간, 약 500억원대의 제작비, <모래시계>의 김종학-송지나 콤비의 재결합, 여기에 1인 한류기업 배용준의 합류 등 <태왕사신기>는 그 위용부터가 남다른 작품이었다. 하지만 제작과정 중 <태왕사신기>는 배용준과 제작진간의 불화설, 표절 논란 등 숱한 소문에 시달렸다. “<디 워>도 많은 찬반양론이 있었는데, <태왕사신기>도 비슷한 논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김종학 PD의 말처럼,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인 <태왕사신기>는 현재 몸값에 걸맞은 거대한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태왕사신기>는 고구려의 왕인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멜로와 판타지를 접목시켜 그린 드라마다. 총 24부작에 불과하지만 <태왕사신기>가 다루는 시간의 양은 매우 방대하다. 건국신화 속 환웅이 광개토대왕으로 환생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고구려 벽화에 나오는 현무, 백호, 청룡, 주작을 사신으로 설정, 광개토대왕이 그들과 함께 동북아 정벌에 성공하여 쥬신(환웅시대 배달민족이 살던 광활한 영토)의 왕이 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광개토대왕이 대한민국의 5천년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획득한 왕이었던 것처럼 <태왕사신기>도 동북아를 비롯한 세계시장 정벌을 야심으로 품고 시작했다. 지난 2004년 9월14일 열렸던 제작발표회에서 연출자인 김종학 PD는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국은 삼국지, 수호지 등의 역사가 있지만 우리는 축소되고 왜소한 역사 속에서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며 “<태왕사신기>가 전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태왕사신기>의 야심은 갈수록 거대해졌고 구체화됐다. 북한에 남아 있는 고조선 및 고구려 유적 로케이션, 완벽한 사전제작을 통한 드라마 제작사의 저작권 보유에 이어 2005년 8월5일 열린 김종학 PD의 기자회견에서는 “<태왕사신기> 첫회를 90여개국에서 동시에 방송하고 총제작비를 500억원까지 투입할 계획”까지 발표됐다. 이 밖에도 <반지의 제왕> 특수효과를 맡았던 웨타스튜디오의 CG작업, 일본의 영화음악가 히사이시 조의 참여 등 <태왕사신기>가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 시스템에서 볼 수 없었던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점이 끊임없이 강조됐다.
끝없이 미뤄지는 방영일정에 의혹 증폭
하지만 제작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지면서 <태왕사신기>는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태왕사신기>의 제작비에 대해 250억원부터 450억원까지 엇갈린 보도를 내놓았고, 이 제작비에는 한류스타 배용준의 스타파워에 힘입은 일본 자본이 유입되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또한 배용준의 출연료가 50억원 이상이라는 것과 웨타스튜디오가 CG작업 도중 제작진과의 마찰로 다시 호주로 돌아갔다는 소문, 배용준과 제작진과의 불화설, 송지나 작가의 도피설 등도 잇따라 나돌았다. 특히 표절시비는 <태왕사신기>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2006년에 표절소송을 제기한 만화 <바람의 나라>의 김진 작가는 “<태왕사신기>의 시놉시스가 작품의 줄거리와 패턴, 신시의 개념 사용, 사신 캐릭터 사용 등의 측면에서 볼 때 <바람의 나라>와 흡사한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민간역사연구단체인 ‘잃어버린 한국 고대사 연구회’의 홍순주 회장은 <태왕사신기>가 자신이 쓴 논문과 시나리오를 표절했다며 제작 및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실질적 유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두 작품의 표절시비를 모두 기각했다. 그 뒤 논란의 정점은 연거푸 계속된 방영 연기였다. 당초 2005년 12월에 방영할 예정이었던 <태왕사신기>는 다시 2006년 9월로 방영 시점이 옮겨졌고, 이어 2007년으로 넘어와서는 3월을 약속했다가 다시 5월28일, 6월25일, 7월2일 등으로 계속 연기됐다. <태왕사신기>의 방영 연기에 MBC는 부랴부랴 주말극으로 예정된 <커피프린스 1호점>을 월화극으로, 월화극으로 준비했던 <9회말 2아웃>을 주말극으로 옮기는 한편 9월 말 방송 예정이었던 이병훈 PD의 <이산 정조대왕>을 앞당기는 계획을 고려하기까지 했다. 일각에서는 아예 2008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으며 MBC노조는 “공영방송 MBC의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김종학 PD는 지난 6월8일, 다시 기자회견을 열어 방영 연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CG작업과 근본적인 드라마의 방향 등에서 총체적인 문제점이 있었다”고 밝혔고, “몰아치면 되겠다는 생각에 방송 일정을 공표하고 다시 번복하는 우를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또한 “하루빨리 촬영을 재개해 9월 초 방송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며 다시 방영 일정을 공표했다.
방영과 함께 새 논란 점화되다
마침내 방영을 시작한 <태왕사신기>는 현재 제작을 진행하던 때보다 더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일단 첫 공개가 매우 떠들썩했다. <태왕사신기>는 지난 9월10일, 제작과정과 드라마의 진행방향, 캐릭터 설명을 담은 <태왕사신기-스페셜>을 시작으로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드라마의 스페셜 프로그램은 <대장금>이나 <허준>, 그리고 최근에는 <커피프린스 1호점> 등도 제작된 바 있지만 <태왕사신기>는 그들과 달리 본방송 전에 방영한 것이다. 또한 화요일부터 목요일에 걸쳐 1회부터 3회까지를 방영한 뒤, 다시 수목드라마로 편성하는 변칙적인 시도를 보였다. 심지어 9월11일에는 <태왕사신기> 첫회 방송을 20여분 앞두고 MBC <뉴스데스크>가 ‘달라지는 사극이 온다’는 제목으로 <태왕사신기>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뉴스까지 드라마 홍보에 나선다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첫회 방송에서는 CG로 구현한 환웅 시대의 풍경과 사신들의 전투가 논란이 되었다. CG는 훌륭했지만 과도하게 사용한 탓에 드라마가 아닌 만화처럼 보였다는 평가와 함께, 본격적인 이야기를 앞둔 시점에서 등장인물들의 전사를 설명하는 부분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점이 지적됐다. 고구려의 역사를 판타지로 그리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한국과 고구려 역사를 놓고 분쟁을 벌였던 중국은 아예 <태왕사신기>에 대한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9월13일 중국 일간지 <동방조보>는 “<태왕사신기>가 왜곡된 역사를 그리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 방영이 금지될 예정”이라며 “중국의 많은 드라마 수입사들이 <태왕사신기> 수입을 시도했지만 당국에서 역사분쟁의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종학 프로덕션의 박창식 제작이사는 “현재 일본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등 아시아 10여개국에 선판매가 되었으며 중국 또한 수출계약을 협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편 극중 담덕(배용준)을 두고 기하(문소리)와 연적 관계에 놓이는 수지니 역의 신예 이지아가 주목할 만한 배우로 떠오르고, 세 남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 유승호, 박은빈, 심은경의 연기가 호평을 받는 등 호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21편의 방영을 남겨놓고 있는 만큼 아직은 단정적인 표현을 쓰기 힘든 상황이다. 과연 <태왕사신기>는 꺼져가는 한류의 불씨를 되살리는 불의 신 ‘주작’이 될 수 있을지 방송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배용준과 우리는 사업파트너일 뿐”
김종학 프로덕션의 박창식 제작이사
-현재까지 남은 분량은 얼마나 되나. =대략 5, 6회 정도다. CG나 오픈세트 장면에 디테일을 추가하고 있다.
-정확한 제작비는 얼마인가. 430억원이란 이야기도 있고, 450억원이란 설도 있다. =아직 확실히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남은 분량도 찍어봐야 안다. 아직 430억원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찍어놓은 걸 손보는 작업이기 때문에 제작비가 늘어나는 변수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자금이 투자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일본에서 투자한 자금은 없다. DVD 판매권과 TV 방영권을 선판매했고 그 수익이 포함되었을 뿐이다. 아마도 일본에서 배용준의 인기가 높기 때문에 불거져나온 소문일 것이다.
-배용준의 출연료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백날 떠들아봐야 입만 아픈 이야기다. 우리는 사업 파트너다. 배용준과 우리는 서로 윈-윈전략으로 수익금에 대한 지분을 나누었다.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 없지만 1억원이나 2억원이라는 설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태왕사신기>의 저작권은 제작사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방송사가 그저 중계기지로 전락해버린다는 것을 두고 한때 반발이 있었다. =방송사에 권리를 주게 되면 국내와 해외에서 투자받은 금액을 어떻게 돌려주겠나. MBC는 본방과 재방, 그리고 케이블 방영과 인터넷 다시보기 권리만 가지고 있다. 그외 해외수출 권한은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다.
-국내 방영 이후 <태왕사신기>의 추후 부가판권 판매 일정은 어떻게 되나. =일단 국내에서는 12월 초까지 방영된다. 해외방영 일정은 아직 나온 게 없다. 더빙이나 자막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또 어떤 나라는 그곳 실정에 맞춰 방영 시간을 조절하기도 해야 한다. 아마도 10월 중순이 넘어야 구체적으로 결정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