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시아>의 한 대목이 인용된다. 섹스가 끝나거나 장면이 바뀔 때엔 주인공의 목소리로 12편의 단가가 삽입된다. 대자로 뻗은 남자의 나체는 광합성을 하는 나무의 이미지로 연결되고 벨리댄스를 추는 여자의 몸동작은 에로티시즘으로 이어진다. <샐러드 기념일>로 유명한 작가 다와라 마치의 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에 눈뜨다>는 33살의 여자 작가 카오리가 사랑과 삶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다. 9살 연상의 유부남 M과 연애를 하고 연하의 바이올리니스트 K와 섹스를 하는 그녀는 몰랐던 불안과 고민을 배우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한다. M과 K가 제시한 불안정한 상황은 그녀의 성장을 돕는 자극이다. 하지만 영화는 카오리의 일상을 과도하게 장식하고 은유한다. 그 과한 추임새가 거북하게 느껴질 정도다. 카오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단가와 일상의 이미지를 비약하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이야기의 진심과 별개로 영화를 어색한 모양새로 포장한다. “사랑은 지름길로 가려 하지만 인생은 돌아가려 한다”, “떨어지듯 날아오른 꽃잎, 문뜩 미소지으며 가지를 떠난다” 등 그냥 들으면 좋을 말도 과하게 포장된 의미 안에서 실소만 내뱉게 한다. 은유가 직접적인 설명보다 더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두 남자와의 경험을 토대로 결국 출산을 선택한 카오리의 결말도 이해하기 힘들다. 출산율 저하를 언급하며 여성성의 보존을 이야기하던 영화의 주장은 카오리의 자유로운 삶이었다. 하지만 그 자유가 출산으로 이어질 때 지금까지 카오리의 고민은 쓸모없이 느껴진다. 여류작가 출신의 아키 요코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