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헵번과 최고의 짝을 이룬 배우는 누구일까?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스펜서 트레이시다. 두 사람은 완벽한 커플의 표본으로 불렸다. 단, 코미디 영역으로 한정한다면 캐리 그랜트가 단연 우세다. 헵번과 트레이시의 안정된 연기보다 헵번과 그랜트의 덜컹거리는 조합이 스크루볼코미디에는 더 어울렸다. 두 사람은 <베이비 길들이기> <홀리데이> <필라델피아 스토리>에서 내리 커플로 나와 장르의 공식이 완성되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비록 <필라델피아 스토리> 이전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해 헵번의 이름에 먹칠을 했으나, 세편 영화는 이후 걸작의 위치에 올랐다. 특히 <홀리데이>와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공히 필립 베리의 희곡을 영화화한 것으로서, 스크루볼코미디가 단골 메뉴인 구애, 결혼, 이혼을 어떻게 변주했는지 파악하기에 좋은 작품들이다. <홀리데이>는 자유와 이상을 꿈꾸던 평범한 남자가 뉴욕의 명문가 사람들과 접하면서 겪는 한바탕 소동을 다루고 있다. 조지 큐커의 스크루볼코미디는 프랭크 카프라의 그것보다는 덜 정치적이고, 하워드 혹스의 그것보다는 더 낭만적이다. 당시는 미국이 대공황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기였기에, 큐커는 상류계급 곁으로 자수성가형 남자를 배치해 현실문제를 적절히 언급하고자 했다. 하마터면 스크루볼코미디 특유의 정신나간 상황으로 빠질 뻔한 <홀리데이>는 노동, 가족, 성실 같은 전통적인 가치에 충실한 캐릭터를 불러들이면서 이야기의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컬럼비아사가 MGM사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준비하던 큐커를 빌려오면서까지 원했던 것은 ‘대중에게 안겨줄 웃음’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정치적 이상을 펼치는 카프라식 인물을 기대하지는 말자. <홀리데이>는 보헤미안의 정서를 간직한 남녀 캐릭터와 함께 현실 도피적이고 낭만적인 결말로 향한다. ‘근심걱정일랑 없는 유한계급의 사랑 이야기, 낙천적인 캐릭터, 종래에는 해결되는 갈등, 빠른 전개와 속도감 넘치는 대사, 엉뚱한 상황의 연속, 현실을 가장한 유토피아의 세계’는 시간이 흘러도 그 매력을 잃지 않았으니, TV시트콤의 원조가 이런 스크루볼코미디임을 재확인시키는 명작이 바로 <홀리데이>다. <홀리데이> DVD는 필름의 관리·복원으로 유명한 UCLA 필름아카이브에서 보관해온 원본을 사용했는데, 70년이 다 된 필름치고는 상태가 훌륭한 편이다. 부록으로는, 캐리 그랜트가 <놀라운 진실> <홀리데이>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 <연인 프라이데이> <사랑의 별장>을 쏟아내던 시절을 영화학자와 전기작가가 조명하는 ‘컬럼비아 영화사와 캐리 그랜트’(7분), 원래 도입부로 찍혔으나 큐커의 마음에 들지 않아 삭제된 장면을 사진으로 재구성한 ‘삭제장면 사진들’(2분)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