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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공간
사진 서지형(스틸기사)최하나 2007-08-28

카페 빵 독립영화 정기상영회 2주년 기념 뮤직비디오 촬영현장

살갗을 태워버릴 듯한 땡볕, 맹렬히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가 금세 온몸을 곤죽으로 만든다. 잿빛 공장들이 시야를 점령하는 가산디지털단지의 도로 한가운데, 가느다란 노래가 울려퍼진다. 작은 나무 상자 위에 위태롭게 자리를 잡고 기타를 끌어안은 여자. 꿈꾸는 듯 나른한 음성과 트럭들이 내지르는 소음이 맞물려 묘한 도취 상태를 자아낸다. “자, 한번만 더 갈게요!” 잠시 더위를 몰아냈던 음악의 장막을 깨뜨리는 목소리. 이곳은 독립영화감독과 인디 뮤지션, 최진성 감독과 흐른이 호흡을 맞춘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이다.

이번 뮤직비디오 탄생의 배경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카페 빵이 주최하는 “카페 빵 독립영화 상영회_빵빵하게 독립영화 보자!”가 있다. 2005년 8월 카페 빵에서 시작된 독립영화 정기상영회가 올해로 2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 “초저예산 뮤직비디오 제작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번 행사에는 장건재 감독과 그림자 궁전, 양해훈 감독과 DJ안과장, 최진성 감독과 흐른이 짝을 이뤄 3편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이게 됐다. 흐른의 <멜빌 스트릿>을 영상에 옮기게 된 최진성 감독은 “흐른이 영국 맨체스터 멜빌 스트리트에 머물렀던 기억에서 만들어진 곡”이라며 “이방인으로서의 섞이지 못하는 정서를 나는 ‘있는데 없는, 혹은 없는데 있는’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있는데 없는, 없는데 있는’이라는 아리송한 문구를 설명해주는 것은 그가 참조했다는 마그리트의 <순례자>와 듀안 마이클의 <허수아비>. 두 그림과 사진의 모티브를 고스란히 이식해놓은 듯 중절모와 양복으로 만들어진 투명 신사가 이어진 촬영의 피사체가 됐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이 신사가 뮤직비디오의 핵심 이미지로 등장하는 가운데, 흐른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인서트로 삽입될 예정이라고.

“초저예산”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뮤직비디오 한편에 책정된 예산은 15만원. 그러나 최진성 감독은 “액수는 사실 상징적인 의미에 가깝다. 무보수로 일하는 재미가 있다”고 여유롭게 웃음을 던진다. 이날 하루 동안 촬영을 마친 <멜빌 스트릿> 뮤직비디오는 태양광을 지우고 3D 나비를 그려넣는 후반작업을 거쳐 8월29일 카페 빵에서 다른 2편의 뮤직비디오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다.

흐른_ “카페 빵이 없었다면 난 주저앉았을 거다”

“빵 사장님이 전화하셔서 이런 거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하시기에, 저야 좋죠! 하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웃음)” 첫 공연부터 지금까지, 카페 빵의 무대 위에서 목소리를 전해온 흐른에게 카페 빵은 “그곳이 없었다면 주저앉았을 것”이라고 주저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내 음악 생활의 전부”와 같은 공간이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또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멜빌 스트릿>을 영상화하는 작업이기에 개인적인 의미가 더욱 크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맨체스터는 사실 역사적인, 꿈의 도시 같은 장소이지 않나. 오래 머무르려면 학생 비자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어학원에 일부러 등록도 하고, 지난해 여름부터 한 8개월을 살았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내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가 됐다는, 그런 느낌이 자연스럽게 노래로 이어졌다.” 2004년 음악에 뛰어들기 전까지 흐른은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지만 잠시 가슴속에 눌러놓았던 꿈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논문이었다. “여성인디뮤지션에 대해 쓰려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무 좋더라. 아, 내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하나둘 가슴을 졸이며 탄생시킨 6곡의 노래는 지난해 <몽유병>이라는 EP 음반으로 세상을 찾았다. “9월에는 빵 컴필레이션도 나온다. 그때 그 앨범에 <멜빌 스트릿>이 수록될 예정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일 가을 즈음에는 그녀의 1집 작업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