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louds 1998년,
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
출연 에두아르도 파블로브스키
<EBS> 10월27일(토) 밤 10시
얼마 전 공중파를 통해 솔라나스 감독의 걸작 <남쪽>이 방영된 바 있다. 이번엔 같은 감독의 최근작 <구름>이 방영된다. 탱고를 비롯해 아르헨티나문화에 바치는 헌사, 그리고 환상적인 비주얼이 압도적이란 점에서 영화는 <남쪽>의 궤를 따르고 있다. <구름>에서 솔라나스 감독은 한 가지 인상적인 시도를 벌인다. 인물들 움직임을 특이하게 구성한 것. 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전경을 비춰보인다. 잿빛 구름이 허공을 가리고 있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정처없이 흘러간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사람들이 예외없이 뒤로 걸어가고 있는 거다. 뛰어가는 이의 발걸음은 역방향이고, 자동차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두들 후진하고 있다. 요컨대 부조리와 퇴행의 시대를 맞이한 아르헨티나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솔라나스 감독은 <구름>에 대해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고 논하고 있다.
<구름>은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내세운 영화다. 이야기 흐름과 관계없이 도시의 적막하면서 회색톤으로 일관된 모습은 영화 사이사이에 불쑥 끼어든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현대에 접어든 뒤 겉으로 보기엔 풍족한 생활의 도시가 된다. 하지만 삶의 질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유서깊은 공연장은 철거될 위기에 처하고 배우들은 생계를 위해, 예술을 위해 철거에 맞서 항의하기로 결심한다. 극단의 대표격인 맥스와 엔리케는 그동안 인생의 전부를 공연에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처지. 극단을 지원할 돈과 여력이 없다는 정부 관리자들에 맞서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솔라나스 감독은 원래 남미 다큐멘터리의 대부로 통하는 인물.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1969)를 비롯해 그는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를 중시하는 다큐 작업을 벌인 바 있다. 다시 말해 영화의 현장성과 정치적인 메시지를 중시했던 거다. 극영화로 발걸음을 돌린 이후 솔라나스 감독은 아르헨티나문화를 영상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가르델의 추방>이나 <남쪽> 같은 수작들을 연이어 만든 것. 그런데 극영화를 만들면서 감독은 나름의 원칙을 고수해나갔다. 할리우드영화, 다시 말해 관습적인 내러티브 전략에 맞서 비서사적인 영화를 연출한 거다. <구름>은 전형적인 장르영화에 저항하는 감독의 영화관을 압축해 보여준다. 뮤지컬과 연극적인 전통을 영화에 섞으면서 극영화의 전형성으로부터 멀찌감치 거리를 둔 것. 감독은 <구름>에서 변함없는 반골기질을 노출한다. 관료들에 맞서 싸우는 배우들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영화만이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영화인의 유일한 무기라는 신념을 설파하고 있다. <구름>은 몇개의 소단락으로 나뉜 다소 산만하면서 분절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거리의 사람과 차들, 그리고 세상이 온통 ‘거꾸로’ 움직인다는, 정치적 의미와 서정성을 간직하는 이미지만으로도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