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손을 얹고 누가 어디까지 학교를 다녔는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따라 달리 본 일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쟤, 저래 가지고 그 대학은 어떻게 나왔지?” “간판이 안 좋아서 기를 쓰고 인정투쟁 벌이는군.” 이렇게 여긴 일이 없지는 않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공사 막론하고 학력과 학벌을 조장하는 일체의 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지키려고 애쓰지만, 내 속의 학력·학벌주의를 완전히 청소해내지는 못했다. 원칙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도 그저 그런 행동들뿐이다. 나의 출신 학교를 밝히지 않거나 남의 출신 학교를 궁금해하지 않는 식의. 이에 대한 소심과 강박이 정신병 수준이라고 느낄 때도 있는데 이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안 보인다. 학력·학벌 카스트에 일조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카스트 사회에서 거짓말을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부 언론이 확인에 들어가니까 그랬다고 평가절하할 일이 아니다. 당사자의 심적 부담은 죗값을 치르고도 남는다.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던 게 아니라 자신의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면. 그게 실존적 품위이건 사회적 자존심이건, 한때의 객기 어린 뻥이 발단이 됐건 실력을 인정받기 위한 욕망이 그랬건 간에 말이다. 이대에 다니지 않았다고 실토한 연극배우 윤석화씨 말처럼 “학력을 갖고 사문서를 위조한 적도 없고 그걸로 어디서 월급 한번 받아본 적도 없다”고 진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후광’으로 얻은 것들도 있겠지만, 그 역시 긴 세월의 마음 졸임으로 일정 정도 탕평되지 않을까 싶다.
검찰은 ‘신뢰 인프라 교란사범 단속 전담반’을 편성해 학위와 자격증, 국내·외 인증 등 3개 분야 위조사범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왜 위조했냐를 구별해야 할 것 같다. 작정하고 이득을 도모하거나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았다면 범죄다. 하지만 한번 두번의 거짓말로 발목이 잡힌 이들이라면? 견고한 학력·학벌 사회의 벽을 부수지도 뛰어넘지도 못한다면, 꼭 그 안에 들어가고픈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뭐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업히거나 개구멍을 뚫는 거 외에. 단속에 앞서 ‘자진 신고 기간’을 줬으면 좋겠다. 말할 기회도 줬으면 좋겠다.
드물지만, 들통이 나고도 변명도 고백도 않는 강심장의 소유자들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적극적으로 학력·학벌주의에 편승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양심 인프라 교란 사범’은 대신 철저히 솎아내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