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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말의 전쟁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펼치는 말과, 그 말에 대한 말은 무섭다. 명분 앞세운 말이 스스로 그 명분을 죽이다 못해 그저 살고자 할 뿐인 생명까지 짓밟는 시간을 말로서 증언한다. 명분으로 말하고 행하는 자의 진심이 진심인 것이 공포스럽다. 말로 빌어먹고 사는 직업을 가진 덕에 행여 그런 누를 저지르지 않았나, 저지를까 공포가 일었다. 대의명분을 도약대 삼은 말들이 부쩍 의심스러워졌다.

‘<디 워> 현상’도 말의 전쟁이다. 그 기세가 공포스러운 건 위세를 부리는 말들이 요상한 명분으로 상대를 짓밟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보다 고약한 건, 그때는 있다 없다를 가르는 기준점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개인의 좋다 싫다를 놓고 심판할 절대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쪽에서 절대기준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으니, 공포스러워도 직업도의상 말로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번호는 <디 워> 현상을 비판적으로 다룬 9쪽짜리 기획이 아니더라도 <디 워> 특집판처럼 돼버렸다. 진중권의 ‘이매진’과 김은형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비롯해 독자란까지 곳곳에서 ‘<디 워>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부러 청한 건 하나도 없다. 이 필자의 글은 본지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우리가 모신 필자답게 우리의 생각과 대략 같다.

가장 이상한 건 심형래 감독이 그토록 고생하며 만든 영화를 영화로 놓고 말하기를 거부하는 점이다. 개봉 전, 후 영화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하고 있다. LA 정킷에 무수한 기자들이 초청돼갔지만 거기에도 감독은 없었다. TV 오락프로그램에 나가서는 말하지만, 그건 영화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 감독에게 묻고 싶은 게 정말 많다. 감독도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을까 싶다. 궁금한 말의 칼은 그쪽이 쥐었으니 따 당하는 게 누군가 싶다.

남동철 편집장이 잠시 휴식을 취하러 갔다. 작금의 사태에 대해 더 무서운 말을 갖고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무섭고… 기대된다. 일주일 편집장 대행 이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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