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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사무라이의 희망찬 일생
ibuti 2007-08-17

<인정 종이풍선> 人情紙風船 <하나> 花よりもなほ

밑바닥 인생을 빌려 변화하는 시대를 도전적으로 읽으려는 사람에게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은 훌륭한 텍스트이자 벗어나기 힘든 모태다. 장 르누아르와 구로사와 아키라가 원작을 각색해 두편의 <밑바닥>을 만들었다면, <인정 종이풍선>과 <하나>는 각각 19세기의 가부키 작품과 오리지널 각본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분위기와 정신은 <밑바닥>에서 가져온 경우다. 두 영화는 사무라이가 주인공인 시대물이지만 무사도와 명예를 주제로 삼을 생각일랑 없다. 대신 지저분한 집단 거주지에 기거하는 밑바닥 인생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밑바닥>의 대사처럼 ‘치욕이나 양심은 권력을 가진 인간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정직하게 살았다간 사흘 안에 굶어 죽는’ 그들은 저열하고 더러운 존재다. 한데 두 영화는 그들에게서 건강한 미소와 자유로운 영혼과 유쾌한 복수극을 발견하고 무기력과 절망을 이겨내는 힘과 가치를 구한다. 군국주의의 부상을 우려했으며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에 비애를 느꼈던 야마나카 사다오는 <인정 종이풍선> 속에 자크 페데의 시적 리얼리즘이 끼친 영향과 함께 자신의 좌파 성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체면과 자존심에 연연하는 가난한 사무라이와 권력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삶을 꾸리는 이발사를 축으로 전개되는 <인정 종이풍선>은, <밑바닥>의 마지막에서 배우의 자살이 의미하는 바를 두 사람의 죽음으로 확장하고 강화한다. 영화의 앞뒤를 장식하는 사무라이의 허무한 죽음이 의미를 잃은 옛 가치관을 은유하는 것과 반대로, 삶과 죽음에 의연한 이발사의 모습은 고통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나갈 민중의 미래를 대변한다. <인정 종이풍선>이 개봉하던 날 징병돼 29살의 나이에 만주에서 죽음을 맞은 야마나카는 유서에다 ‘내 마지막 영화가 패배자의 슬픔으로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영화인들은 꼭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써놓았다. <하나>가 그 기대에 걸맞은 영화인지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최소한 <인정 종이풍선>에 바치는 이 시대의 화답으로 더없이 어울린다. <하나>는 아버지의 원한을 갚고자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에 머물고 있는 사무라이의 이야기다. <인정 종이풍선>에서 벌어진 사무라이의 자살을 극중 일화로 소개하는 <하나>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죽음의 비극을 뒤집어 삶의 기쁨쪽으로 향한다. 일본이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를 거친 다음에 만들어진 <하나>에는 선배의 영화 같은 절절함이 없으며, 감독은 사회의 불합리함보다 일본인의 의식에 뿌리박힌 ‘주신구라’(忠臣藏)의 무게를 덜어내는 데 더 관심을 둔다. 47명의 무사가 주군의 복수를 감행하던 시대배경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영화는 복수의 길을 걷던 사무라이가 밑바닥 사람을 접하다 깨달은 희망에 방점을 찍는다. 영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의 풍요로움’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바람대로 <하나>는 ‘인간의 가능성에 관한 영화’로 완성됐고, 고레에다는 그 가능성을 밑바닥 인생에서 찾으면서 고리키와 야마나카를 눈앞에 대한다. 100년을 사이에 둔 정녕 아름다운 만남이다.

제작된 지 70년된 영화의 복원에는 한계가 있는 법, <인정 종이풍선> DVD의 화질과 음질은 좋지 않다. 아오야마 신지의 헌사, 토니 레인즈의 비평, 야마나카 사다오의 일기를 수록한 책자가 나름대로 부록의 역할을 다한다. 왠지 희끄무레했던 프린트와 비교하면 <하나>는 DVD 화질이 오히려 시원한 편이다. ‘제작과정’(44분)은 감독 및 스탭들과 나눈 대화와 현장 영상을 담은 것으로서, 촬영감독 야마자키 유타카가 스타일을 바꾼 사연, 구로사와 아키라의 장녀인 구로사와 가즈코가 의상을 만들면서 역점을 둔 부분, 영화의 출발점과 고심 끝에 얻어낸 마지막 장면 등 <하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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