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였다> 신상옥 지음 l 랜덤하우스 펴냄
세상 어떤 감독이 영화라는 거대한 신전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을까. 한술 더 떠 자신의 존재를 영화와 동일시하는 감독이라면. 오만하게까지 여겨지는 책 제목에서 누군가는 ‘피∼’ 하고 코웃음부터 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발화의 주인이 신상옥이라면 수긍 못할 일도 아니다. 스스로 술회하듯 그는 “영화에 미친 놈”이었다. 한국영화사 연구자인 조영정의 표현대로 그는 “영화라면 무엇이든 저지를” 사람이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을 돌며 그가 남긴 전설을 한번이라도 귀동냥으로 들어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그가 마지막 남긴 글의 첫머리에 ‘난, 영화였다’라는 서명을 남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4월 타계한 고(故) 신상옥 감독의 자서전은 “부모의 돈을 훔쳐 고물 영사기를 샀던”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꼬마의 꿈으로 시작한다. <악야>(1952)로 충무로에 뛰어든 뒤 <어느 여대생의 고백> <성춘향> 등의 성공을 통해 1960년대 신필름 왕국을 건설하게 된 일화가, 1970년대 말 아내였던 최은희에 이어 납북된 뒤 북한에서 카메라를 잡게 된 기억이, 평생의 숙원이었던 꿈의 대지 할리우드에 발딛기 위한 분투가 숨차게 이어진다. 앙드레 김이 배우가 되기 위해 신필름을 찾아왔다거나 신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활동할 당시 “여자들이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잘 활용하여 이긴다는” 설정의 에로틱 액션영화를 기획한 적 있다는 에피소드 등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상옥 감독은 책에서 여러 차례 자신을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 성실한 쟁이로 명명한다. “온몸으로 영화를 배웠기에” 테크니션으로서의 시도는 높이 치는 반면 “짙은 삶의 냄새와 생생한 실감을 필름에 담지 못했다”며 작가로서의 재능은 부정한다. 북한에서 죽음을 곱씹으며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남한에서 만든 영화를 모두 불살라버리고 싶었다는 고백은 그의 재능을 반토막냈을 시대의 억압과 맞물려 더욱 절절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온몸으로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내 눈이 렌즈가 되고 내 호흡이 돌아가는 필름에 리듬이고 템포가 되어야 한다.” 멜로부터 괴기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았던 불가사리이자, 거대한 영화왕국을 세우려 했던 칭기즈칸이기도 했던 신상옥. 박정희와 김정일을 대하는 양가적 태도와 평가에서 드러나듯이, 영화야말로 그의 삶의 유일한 이데올로기였고, 생명수였다.
이 책의 원고는 2001년 11월 이전에 쓰여진 것들인데, 매 글의 끝머리에 300여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80여편의 영화를 연출했음에도 여전히 배고픈 창작자로서의 허기가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죽음을 맞기까지의 5년이 넘는 시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단지 건강상의 문제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숨을 거두기 전, 신상옥 감독은 자신의 운명을 곱씹으며 한없이 엄격하고 냉정했던 영화라는 신에게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내가 곧 당신이었다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 생(生)을 영화에 비추며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했던 신상옥 감독의 마지막 자기 긍정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