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타국의 인권문제를 또다시 스크린에 불러온다. 다이아몬드 채굴(<블러드 다이아몬드>), 르완다 내전(<호텔 르완다>) 등에 이어 영화적 소재로 부상한 것은 리비아에서 426명의 어린이들에게 에이즈를 감염시켰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힌 외국 의료진 문제다. 사형을 선고받아 8년간 복역한 그들은 줄곧 무죄를 주장했고,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지난 7월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 불가리아인 간호사 다섯명과 팔레스타인 출신 의사 한명으로 이뤄진 이들의 사연에 관심을 표한 곳은 식스센스 프로덕션. <호텔 르완다>의 투자를 도왔던 할리우드 제작사다. 샘 포이어 대표는 “세계는 부당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건 그저 불가리아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세계가 배워야 하는 인간의 이야기다”라며 기획 동기를 설명했다. 영화의 제목은 체포되기 직전 의료진들이 머물렀던 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벵가지에서 인용해 <벵가지 식스>(The Benghazi Six)로 결정됐다. “우리의 일은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스크립트를 만들어 스타급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이라는 포이어 대표의 발언을 증명하듯 제작사쪽은 시나리오작가로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쓴 앤 피콕과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1998년 벵가지 알-파티 어린이 병원에서 치료받은 수백명의 아이들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면서 발생했다. 정부는 별다른 조사없이 타국 출신 의료진들에게 화살을 돌렸고, 1999년 초 이곳에서 일했던 19명의 외국인들이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얼마 뒤 13명은 석방됐으나 그들 역시 지난 7월까지 리비아에 강제로 억류당해야 했다. 애초 유죄로 판명된 외국 의료진들은 전기 쇼크, 매질, 성적 학대 등 고문에 못 이겨 에이즈 바이러스를 주입했다고 거짓으로 증언했음을 토로했다. 서구의 과학자들 역시 에이즈 창궐의 가장 큰 원인은 리비아의 비능률적인 의료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불가리아가 EU에 가입하면서 EU와 미국쪽의 압박이 한층 강해지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의료진들은 가까스로 불가리아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