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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위대한 유산> <패밀리 맨> <디 아워스>
2007-08-17

내 인생의 지침서들

난 나에게 늘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스무살이 넘으면서부터 생긴 습관 중 하나인데, 그건 대부분 무언가 집중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해보는 ‘나는 지금 어디에? 나는 어디로?’라는 질문이다. 그걸 떠올리고 나면 그 순간 잠시 나는 정말로 나와 단둘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여러 시점으로 나를 사방에서 내려다보면 간과함없이 정확한 그 순간의 나를 측정해볼 수 있는데 이 행위를 마치고 나면 좀 더 정신을 바로잡은 기분이랄까, 그리고 믿음으로 연결된 누군가에게 다시 한번 위로받고 구원받은 기분이 든다.

스무살이 되기 전에는 한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난 그저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갔다가 종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으니까. 뭐 학교 다녀와서 친구들과 놀러나간다든지가 피아노 학원에 가서 연습을 한다든가 하는 일들도 있었지만 내일은 예상 못할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라는 꿈을 꾸기엔 나는 그냥 그 다음날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짜증나는 사실이 더 힘이 들 뿐이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보낸 뒤의 스무살이어서 그런 걸까, 나의 스무살은 놀랍기만 한 나날들이었다. 뭐든지 극대화되어서 다가왔다. 기쁨도, 슬픔도. 그래서 그 소용돌이 같은 시간 속에서 난 자꾸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 순간에 대해 말을 걸어 그걸 좀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허무하게 사라져버리지 않게 한번 더 곱씹었다. 그러자 차츰 ‘나’라는 모양새가 갖춰져갔고, 그 즈음 만난 영화 <위대한 유산>에서 죄수 루스티그의 멋진 대사, ‘남자는 손으로 말하는 거야’는 정말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다. 여자인데 왜 저 대사가 와닿느냐고? 난 이 대사를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쇼잉이 표현의 수단이 된다면 저 내추럴함부터가 시작이다’라고. 저 말 덕에 절대적인 나만의 공간에 단지 허영에 찬 여자의 모습이 들어오는 걸 웬만큼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 군더더기 따위가 날 감싸는 건 참을 수 없다.

이렇게 <위대한 유산>에서는 모양새에 대해 배웠고, 또 <패밀리 맨>에선 사랑에 대해 배웠다. 영화 마지막에서 잭 캠벨(니콜라스 케이지)은 딸 애니는 마음에 있는 말을 다 해서 어른스럽고, 아들 조시의 눈을 보면 그 아이가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서 기적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 케이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어서 곁에 있는 자신까지도 훌륭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머리를 땅!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대방의 단점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장점을 살려주어 상대방이 자신을 훌륭한 사람인 양 느끼게 해주는 그게 진정한 사랑 같았다.

이렇게 두 영화는, 내게 인격 형성에 영향을 줬다고나 할까. 요즘도 자주 다시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일기장을 여는 것 같고, 수첩을 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둘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디 아워스>. 이 영화는 여성이라서 공감할 수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행복해야 할 그녀들이었지만, 그들 모두는 그렇지 않았다. 난 그다지 큰 정신 병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내 삶과 일에 관련된 것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불안을 느낄 때가 많다. 마치 댈러웨이 부인처럼 말이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나는 다르다. 그녀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지만 나는 내가 택한 길을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답답하고 불안하다. 왜일까. 어쩌면 그건 남들이 바라보는 기준과 그로 인해 내 안에 나를 가두는 나의 불안함에서 비롯된 잘못된 굴레 탓이 아닐까. 마음속에선 그녀들처럼 나 역시 탈출구를 찾았다. 그녀들은 죽음, 도피인생, 남편의 죽음 등의 결말을 맞았지만 내가 그 시대의 댈러웨이 부인이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딱히 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남들의 기준에서가 아닌 내 기준에서의 행복이 무엇인지, 그걸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깨닫긴 했지만, 그렇게 느꼈을 뿐 해답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이렇게 세 영화가 나의 인생의 영화다. 영화는 내게 인생의 지침서, 기억의 저장고, 그리고 음악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의 예술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보는 시간이 노래하는 시간 다음으로 소중하다.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늙어감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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