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책 <만들어진 신>을 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신은 없고, 모든 종교는 사기이며, 신이 없어도 인간은 충분히 선하고 행복하게 더불어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로버트 퍼시그), “불합리한 것을 당신이 믿게끔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게도 할 수 있다”(볼테르) 등 곳곳에 주옥같은 말씀을 펼쳐놓았다. 내가 놀란 것은 이런 훌륭한 책을 앞에 두고 조느라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는 것이다(나, 대학 나온 여자야…). 평소 너무 생각을 안 하고 산 게야. 지은이는 내 ‘상태’도 버틀란트 러셀의 말을 인용해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아프간에서 벌어진 한국인 피랍과 살해로 세상이 시끄러워도 끄덕없는 두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하나는 “그럼에도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맹목적 복음주의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테러리스트와 타협할수 없다”는 맹목적 미국 관리들이다.
이들은 비겁하기까지 하다. 피랍된 이들의 가이드를 맡은 이들의 비자 발급을 책임졌던 한 선교단체 대표는 그들이 자기네 기관과 관련없다고 발뺌하고, 지난해 자국 여성 언론인과 자기네 수용소에 억류돼 있던 이라크 여성 5명을 맞바꿨던 미국은 전례가 없다며 우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선교단체는 물론 이들과 정신상태가 비슷한 다른 교회에서는 계속해서 보내고 또 보내리라 기염을 토하고, 미국의 꼭두각시인 아프간 정부와 나토군은 인질들이 잡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남쪽 가즈니주에서 지금까지 하던 군사행동을 계속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은 늘 이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웬만해선 뜯어말릴 엄두조차 못낸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든 자유의 이름으로든 이들이 자신들과 ‘동맹’이라고 굳건히 믿는다. 그리하여 이들은 거침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실천하겠다며 악령을 무찌르러 떠날 태세고, 비무장 민간인이 잡히고 살해당하고 위험해져도 테러와의 전쟁을 실천하겠다며 군사적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 두 부류는 공교롭게도 같은 신을 모시는데, 리처드 도킨스는 이들의 ‘상태’도 간명하게 설명한다. 이들은 자기들의 “믿음을 믿는다”(대니얼 데닛). 부디 남아 있는 피랍자들이 ‘그 믿음’의 제물이 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