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민은 짐작보다 달변이었다. 비유는 풍성했고 예시를 끌어쓰거나 농담을 섞어가며 마음을 녹였다. 울림있는 목소리와 진심어린 어조. 대학 시절 이태원에서 스키복을 팔며 대단한 세일즈 실력을 뽐냈다는 일화는 어쩌면 농담처럼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우린 모두 그 목소리 때문에 김명민, 혹은 장준혁의 마력에 묘하게 이끌리지 않았던가. <리턴>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명민은 <하얀거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듯했다. 동시에 장준혁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의식하기에는 10여년의 연기생활 동안 그가 끈질기게 쌓은 탑이 그보다 훨씬 크고 높고 단단해 보였다. 적지 않은 작품에서 조·단역으로 단련받고, <카이스트>로 얼굴을 알리고, <뜨거운 것이 좋아>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등을 거치고, <소름>으로 스크린에 데뷔하고, <거울 속으로>와 <스턴트맨>을 이겨내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하얀거탑>으로 열렬히 화답받기까지. 김명민의 설득력은 짧다면 짧고 지루하다면 지루했을 시간 속에서 자신을 다그치고 고쳐세우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얀거탑> 끝나고 한동안 슬럼프를 겪는 것 같았다. =매번 겪는 과정이다. 누구나 정신병을 앓잖나. 예를 들어 정말 마음에 드는 신발을 봤다. 나 포기했어,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이 난다. 그걸 어떻게든 사야 한다. 똑같다. 어떤 인물인 양 착각에 빠져서 연기하고 5개월 정도를 그렇게 살다보면 당연히 안에 들어온 것들이 있다. 그걸 끄집어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특히 장준혁은 누구나 정말 사고 싶은 신발이었을 것 같다. =그 역할 하고 나서 축하한다, 부럽다는 말 너무 많이 들었다. 동료배우들이 넌 정말 행운아야, 그러더라. 난 정말 행운아지. 장준혁은 모든 남자들이 탐내는 역할이다.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왜 <리턴>을 선택했나. =빨리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데 캐릭터가 한명이 비었다,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제안을 받았다. 다 캐스팅된 상태에서 급조됐다. (웃음)
-그래도 뭔가 마음을 끌었을 텐데. =1년 전에 같은 시나리오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등장인물의 유기적인 관계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것 같았고 미숙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그 사이 다른 배우가 그 역에 캐스팅됐지만 그분이 우여곡절 끝에 못하게 되면서 류재우 자리가 비었다더라. 그 뒤 다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아주 좋은 시나리오로 변해 있더라. 다른 배우들도 다 캐스팅된 상태였고. 내가 잘 아는 사람들로. 굉장히 짧은 시간에 선택했다. “네가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 “우린 2개월 기다렸다.” 준상이 형한테 전화오고. 유석이한테도 전화오고.
-아는 사이라고 해도 남자배우가 벌써 넷인데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은 없었나. =그게 우리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배우가 넷이나 모였으니까. 그런데 연습 중에 MT를 가고 몸으로 직접 부딪치면서 그런 게 없어졌다. 무엇보다 상대에게 솔직했다. 보통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잖나. 속으로 투털대고. 우리는 대놓고 그랬다. “형, 여기선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촬영이 지연될지언정 도움이 됐다.
-<불멸의 이순신>의 이순신, <하얀거탑>의 장준혁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연기하기 어려웠을 캐릭터다. <리턴>의 류재우를 연기할 때는 어떤 부분에 중심을 뒀는지. =솔직히 류재우는 힘을 실으면 안 되는 인물이다. 전체 이야기를 끌고가는 캐릭터라서 뭔가 부여하려고 하면 영화가 지루해질 수 있다. 감독님한테 반만 드러내고 반은 덜어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감독님도 절대 찬성.
-<소름> 때 윤종찬 감독이 장진영은 채워야 하고 김명민은 비워야 한다고 말했다던데 그것과 비슷한 맥락인가. =글쎄. 어쩌면 내가 욕심이 많아 보이나보다. 욕심만큼 제대로 안 되고 마음만 앞서면 피곤해지지. 예를 들면 장준혁도 마찬가지였다. 비우는 게 진짜 어렵다. 옛날에 연기를 공부할 때 내 자신이 100이면 90이나 100까지는 채우려고 했는데, 그래야 성이 찼는데 그게 전혀 도움이 안 되더라. 반 정도의 여유를 항상 둬야 한다. 넘치는 것보다 모자라는 게 낫다는 사실을 갈수록 깨닫는다.
-오히려 완벽주의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 않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다. (웃음) 왜 모자란 사람은 완벽해지려고 하지 않나.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완벽주의자인 거고. 완벽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거다.
-<리턴> 준비하면서 의학 관련 공부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일일이 알겠나. 다 잊어버렸지, 벌써. (웃음)
-그래도 수술하는 법, 기구 다루는 법 등은 배우지 않았나. =수술실에 몇번 들어갔다. 의사들이 무슨 이야기하면서 수술하는지 보고. 동영상도 계속 보고. 생각보다 쉽다. 집에서 밥먹고 바느질했다. 내 양말도 잘라서 한번 꿰매보고. 틈만 나면 연습했다. 옆사람이랑 대화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니까.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하려면 의사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수술하고 이 환자를 어떤 눈빛으로 대하는지 알아야 한다.
-<불멸의 이순신> <하얀거탑> <리턴>은 남자배우가 많은 작품이다. 연기한 캐릭터를 봐도 남자들의 세계에서 성공했을뿐더러 남자를 다루는 법을 아는 남자들이다. =솔직히 나는 남자를 더 좋아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나 친구, 후배들이 많지만 대부분 남자다. 여동생은 내가 불편하다. 예전에도 따르는 동생들이 다 남자였다. 남동생들이 좋아한다. 여동생들에겐 답문자도 잘 안 보낸다. 희한하다. 남자애들은 바로바로 해줘야 하고.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가. =의리, 진짜 중요하다.
-그전에 “설렁설렁하는 인터뷰는 안 좋아해서 5분만 내서 하는 인터뷰는 거절한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솔직해지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차피 그분도 김명민의 속내를 들으려고 오는 것 아닌가. 촬영장에선 인터뷰 절대 안 돼 그랬다. 내게 5분, 10분, 아니 1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해도 머릿속은 이미 다음 신으로 꽉 차 있을 테니까. 그러면 겉도는 이야기밖에 안 나온다. 나는 그게 싫다. 이 사람이 얼마나 솔직하게 자기 속에 있는 걸 이야기하느냐는 들어보면 알잖나. 그때도 <하얀거탑> 촬영 중간중간에 기자분들과 인터뷰했다. 너무 오래 기다리시니까. 나랑 눈 안 마주치려고 내가 지나가면 세트 구경하는 척하시고. (웃음)
-<하얀거탑> 때는 비중이 워낙 커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오히려 그럴 때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하는 타입인 것 같다.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부담감이나 책임감 같은 심적인 것들이 촬영 들어가기 전에 굉장히 증폭된다. 일단 촬영 들어가면 나는 ‘배째라주의’다. 여기서는 내가 하는 게 맞아, 나보다 잘할 사람이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 빨리 몰입하도록 도와주는 나만의 마인드 컨트롤인 셈이다.
-보통 한 캐릭터로 강하게 각인된 배우들은 다른 캐릭터를 선택할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나.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불멸의 이순신> 했을 때 너는 임마, 평생 장군이야, 어떡할래,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이게 참 묘한 것 같다. 이순신 장군 본 사람, 지금 다 죽었다. 장준혁 본 사람도 없지 않나. 그 연기를 한 사람이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거다. 만약 다른 역할을 하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불멸의 이순신>에는 어떻게 캐스팅됐나. 당시 조연급 배우가 주연이 됐다고 말들이 많았다. =장난 아니었지. KBS 이성주 감독님이 전화를 했다.
-어떻게 캐스팅됐는지. =그러게. 당시 최수종 형이 한다, 정준호씨가 한다, 이병헌씨가 한다, 송일국씨가 한다, 말이 많았다. <불멸의 이순신> 때문이라고 하시기에 한동안 유학을 가야 해서 활동 못할 것 같다니까 얼굴만 보자고 하시더라. 대장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순신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뭘 보고 그러세요, <꽃보다 아름다워>를 보셨다나. 갈색머리로 염색한 인철을? (웃음) 유학 준비를 다 해놨기 때문에 힘들 것 같습니다. 그때 감독님은 오히려 뭔가 있구나 싶었다고 하시더라.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게 아니니까.
-50회를 하기 전에 슬럼프가 왔다고 들었다. =그런 느낌이다.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한달의 스케줄이 끝나고 두달 정도가 남았다. 그 상황이면 공연 10분 전까지도 당구치고 있다. 매너리즘. 50회 정도면 캐릭터에 대해 감을 잡잖나. 신마다 주야장천 나오니까. 세트장에 한번 들어가서 7, 8시간 뒤에 나온 적도 있다. 나는 완전 마담이야. 손님들 받고. 대장들, 부하 장수들, 도성 궁궐쪽의 누구, 중국 명나라 누구, 포졸들 들어오고. 옆에선 이제 장군 다 됐어, 그러는데 나는 너무 괴로웠다.
-<거울 속으로>가 흥행에 실패하고 <스턴트맨>이 엎어졌다. 그때가 언제인가. =2002부터 2004년, 그즈음이었다. 최악의 시기. 그러니까 유학을 생각했지.
-뉴질랜드로 떠나려고 했다고 들었다. 당시 아내가 임신 7개월이었는데 아기가 안 자란다고 너무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고 의사가 주의를 주기도 했다고. 연기를 계속한 것이 결국 <불멸의 이순신> 때문이었나. =맞다. 그때 캐스팅됐다.
-너무 극적이다. =아이 태어나기 4일 전이었다. 감독님을 4월2일 만났는데 4월5일에 태어났으니. 3일의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아내가 출산을 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서 전화를 못했다. 그때 감독님한테 전화가 왔다. 하는 걸로 알겠다고. 애가 태어나면서 뭔가 갖고 나온 거지.
-밭은 시간 안에 <불멸의 이순신>과 <하얀거탑>으로 홈런을 두번 쳤다. =때가 돼서 하나씩 하나씩 오는 것 같다. <불멸의 이순신>이 서른에 왔다면 됐겠나. <하얀거탑>이 스물여덟에 왔다면 가능했겠나. 세월을 거치면서 잡초처럼 다져지고 몸과 마음에 상처도 나고 오기도 생기면서 가능했던 거다. 그전까지 운이 없다는 말을 정말 자주 들었다. 나중에는 그 이야기가 너무 싫었다. 도대체 운이 뭐기에. 결국 그게 내 그릇이었다. 그릇이 크면 운도, 기회가 더 많이 찾아온다.
-영화계가 어렵다는 소식이 많은데도 차기작을 영화 <무방비 도시>로 골랐다. =솔직히 영화에서 많이 데였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소름> 이후 드라마쪽은 쟨 영화만 한대. 영화 두편 말아먹으니까 드라마도, 영화도 하기 힘들고. 영화에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다. 사실 <소름>을 찍을 때는 영화배우와 탤런트에 대한 경계가 분명했다. 영화배우는 배우, TV에 나오는 배우는 탤런트. 서러움 아닌 서러움도 겪었다. 윤종찬 감독님이 진영이는 영화 몇편 찍어봤으니 알겠지만 영화는 이게 아니야, 그러시더라. TV에 나오는 사람은 배우 아니야? 나를 힘들게 했던 의문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은 신학을 전공하길 바랐다고 들었다. 어떻게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나. =시험을 몰래 봤다. 연기는 자라면서 생활처럼 자연스러웠던 부분이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교회에서 성극제, 연합회 같은 걸 많이 했다. 나가면 꼭 상을 받았다. 학교에서도 연극반 활동을 했고. 무대에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게 편했다. 직업으로 고민한 적이 한번도 없다. 다른 친구들이 미래를 고민할 때 나는 확고했다.
-대학 때는 어떤 학생이었나. =정말 전투적이었다. 집에서 극장, 도서관, 그리고 집. 동기들은 다 안다. 오로지 내가 할 것은 연극, 내가 말할 곳은 무대. 같이 다니면서 술 마시는 일은 절대 없었다.
-차기작인 <무방비 도시>에선 어떤 캐릭터를 맡았나. =형사 역할이다. 소매치기로 악명을 떨쳤던 엄마가 치가 떨려서 형사가 된 캐릭터다. 광역수사대 이야기라서 인천 광역수사대 분들을 만나고 있다. 7월25일에 촬영 시작한다.
-차기작이 <파트너>에서 <무방비 도시>로 바뀌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파트너>쪽의 제작이 연기되는 바람에.
-이제 연기경력 10년이다. 그동안 터득한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연기적인 면을 설명하자면 끝이 없다. 사람과 관계하는 법 혹은 함께 연기하는 배우에 대한 존경 정도? 나를 의심하면서 하는 연기는 바로 탄로난다. 상대방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배우가 내 애인 역할을 맡았다면 그 사람을 진짜 사랑하는 여자처럼 대해야 연기가 나온다. 그래서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사람을 신뢰하는 것도 여유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