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다. 많이 팔리고 인정받는 것을 떠나 독자에게 사랑받는 작가다. 이제 일본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이 팔리고 사랑받는 일본 작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이다. 현재 국내 출간된 소설만 12종 19권에 이르며, 그중 <브레이브 스토리>는 만화로도 만들어져 14권까지 나왔다. 그녀의 작품들 중 추리소설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SF, 판타지, 시대물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발표하고 있다. <스텝 파더 스텝>은 열세살 쌍둥이가 노총각 도둑을 자신들의 아버지로 만드는 이야기를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냈다. RPG 게임 중독이라 직원들에게서 온라인 게임 금지령을 받을 정도로 몰두하는 그녀는 게임을 바탕으로 한 <ICO>, 게임의 영향을 받은 <드림버스터>를 쓰기도 했다. 지갑을 화자로 설정한 연작 단편집 <나는 지갑이다>는 <이유>나 <모방범> 같은 대작들에 비해 가볍고 즐겁게 읽힌다. <스나크 사냥> <쓸쓸한 사냥꾼> <가모우 저택 사건>도 곧 출간 예정인데, 그녀가 쓰는 속도까지 감안하면 한동안 1년에 2∼3권꼴로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한국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작품 목록에는 홈런과 안타가 두루 섞여 있으니, 물밀듯 쏟아져나오는 일본 소설 중 작가의 이름을 믿고 책값을 투자하기에 믿음직한 우량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사건보다 사건을 둘러싼 인간의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의 본명은 야베 미유키로,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법률사무소에서 속기사로 일하다가, 1984년 고단샤 페이머스 스쿨 엔터테인먼크 소설 교실을 수강한 것을 계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야마무라 마사오, 다키가와 교우를 비롯한 추리작가들과 SF를 비롯한 다양한 대중소설을 썼던 시노다 세쓰코 등이 당시 소설 교실의 강사였다. 이내 각종 신인공모전에 투고를 시작, 1년 만인 1985년 다소 밝은 분위기의 고지 미스터리인 <우리 이웃의 범죄>로 올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1986년 시대추리물 <가아미타치>로 제12회 역사문학상 가작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줄곧 상승세. 미야베 미유키는 1989년 <마술은 속삭인다>가 제2회 일본추리서스펜스 대상을, 92년 <용은 잠들다>가 일본추리작가협회 장편상을, <혼조 후카가와의 신기한 이야기>가 제13회 요시카와 에이지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1993년 <화차>는 제5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1997년 <가모우 저택 사건>은 제18회 일본SF 대상을, 1999년 <이유>는 제120회 나오키상을, 2001년 <모방범>은 매일출판문화상 특별상과 이듬해의 시바 료타로상,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 문학부문에서 수상했다. 미야베 미유키 수상 내력만 정리해도 일본의 웬만한 문학상은 꿸 정도다. 현재 하드보일드 소설가 오사와 아리마사, 요괴 전문가인 추리소설가 교고쿠 나쓰히코와 함께 세 사람의 성을 딴 사무실 ‘다이쿄쿠구’를 운영하고 있다.
전후 일본 미스터리계가 활성화되면서 경제상황과 관계없이 미스터리 문학은 꾸준한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요코미조 세이지에서 마쓰모토 세이초로 이어지는 정통 추리물의 흐름과 더불어 모험소설, 하드보일드 등 다양한 작풍의 소설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사회파 추리물의 인기가 가라앉던 시점이 1987년이었다. 그해, 교토대학 추리소설연구회 출신의 아야쓰지 유키토는 <십각관의 비밀>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을 계기로 한동안 일본에서는 신본격추리소설이 인기를 끌게 된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밀실살인, 연쇄살인이 신본격추리의 특징인데, 같은 시기에 데뷔했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그와는 다른 길을 갔다. 한장, 한 문장으로 앞의 이야기를 뒤엎는 놀라운 반전이 아니라 오히려 마지막 몇장이 없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은, 사건보다 사건을 둘러싼 인간의 이야기들이 그녀의 주된 관심사다. 현재 신본격의 인기가 가라앉은 뒤에도 미야베 미유키의 인기는 가라앉을 줄 모른다. 그 힘은 어디 있을까.
미야베 미유키의 주된 관심사는 사건보다 인간이다. 그녀의 소설에서 눈이 가는 곳은, 범죄의 잔혹함, 불가사의함보다 그 사건의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트릭만으로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마술은 속삭인다>의 경우, 범인이 전지전능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할 것 같았던 사건의 내막은 약간 허탈한데 거기에도 부연설명이 붙는다. 등을 떠민 것이 범인인가 피해자인가. 죄를 짓고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그렇다고 사건의 원인이 되는 인간을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쪽 가정을 묘사하는 시선이 따뜻하다면 살인자를 비롯한 가해자들을 묘사하는 미야베 미유키의 시선은 무표정하다. 무표정하기 때문에 서늘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신용사회’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허울을 벗기는 <화차>에서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던 한 여자의 파국을 재구성하는 그녀의 필치는 공포물처럼 소름돋는데, 그 이유는 가해자 또한 피해자였던 사회의 구조적 내막을 파헤치는 데 있어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담담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상을 드러내는 치밀한 이야기 구성
미야베 미유키 자신이 스티븐 킹과 딘 쿤츠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쓰모토 세이초야말로 그녀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야 말로 범죄가 태동하는 곳이다. 웬만한 공포소설이나 추리물보다 일간지 사회면이 가장 끔찍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사실적인 이야기가 가장 잔혹한 이야기가 된다. 버는 것 이상의 돈을 쓰도록 장려해 개인파산과 신용불량으로 치닫게 한다거나(<화차>), 호황기에 착공되어 불황기에 입주가 시작된 고급 아파트에서 일가족 살인사건이 벌어진다거나(<이유>) 하는 식이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인간의 본성을 핵심에 둔 그녀의 소설이 장르에 대한 호오를 떠나 일반 독자들에게도 쉽게 읽히는 것은, 이야기의 시작점이 어디까지나 ‘우리’ 혹은 ‘이웃’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안 좋은 시기에 주택 융자를 받아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현실보다 더 멋져 보이는 나를 상상하며 신용카드를 사용했는데 그 액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면? 어디까지나 생활인의 관점에서 사회면 뉴스의 이면을 그려가는 게 그녀의 힘이다. 누가 자살했다, 누가 살해됐다, 는 한마디 이후에 숨어 있는 그 주변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말 방아쇠를 당긴 건 누구인가. 여기에 르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치밀하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끈질긴 면이 가세한다. <이유>는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가 그랬던 것처럼 범죄가 일어난 주요 인물들 주변 200km를 샅샅이 뒤진 것 같은 꼼꼼한 상황 묘사, 실제 사건에는 큰 관련이 없지만 사실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작은 영향을 끼쳤다고도 생각할 수 없는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놓치지 않고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완성한다. 가까이서 보면 하나의 점에 불과할지 몰라도, 책을 덮는 순간 현재, 일본의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280만부가 넘게 팔린 <모방범>은 원고지 6천매의 대작이다. 한국판은 무려 1621쪽. 5년에 걸쳐 연재한 소설인데, 범죄가 하나의 이벤트로 전락한 현대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비대해진 사회는 소규모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치유의 기능을 완전히 잃었고, 잔혹한 범죄에 관심을 갖고 뉴스거리를 찾는 언론은 오히려 범죄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마이클 무어가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말했던 것처럼, 공포야말로 가장 잘 팔리는 산업이 되었다. 흉악범죄를 낳은 원인의 경중보다 범죄의 규모가 얼마나 큰가에 따라 뉴스 가치가 결정되고 소비되는 현실이, 그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여전히 많은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지만(<브레이브 스토리> <솔로몬의 위증> 등), 그중 일반인 탐정이 등장하는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는 미야베 미유키가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름 없는 독’에 대해 계속 파고들 것임을 알려준다. 스기무라 사부로는 정확히 말해 탐정이 아니라 대기업 사보 편집자. 분노보다는 불안이, 이 시리즈의 중점이다.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인 스기무라 사부로가 우연히 말려들게 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당신이나 당신 이웃이 저지르고 있을 법한 일들. 지인들과의 수다에 흔히 올라오는 누군가의 바람기, 새집증후군, 우연한 사고, 말썽을 피우는 직원 같은 문제들 말이다. 세상을 물들이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독이 어디서 오는지, 왜 생기는지, 어떻게 퍼지는지에 대해 미야베 미유키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그녀의 책은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