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네바캉스의 야심작은 일본 B급영화를 대표하는 미이케 다카시의 회고전이다. ‘종횡무진-미이케 다카시 熱傳’으로 이름 붙여진 이 섹션에 포함된 영화는 모두 다섯편이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같이 잘 알려진 영화도 있지만, <태양의 상처>와 <46억년의 사랑>처럼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근작들도 있다. 1년에 많으면 6∼7편, 적어도 3∼4편을, 그것도 어린이영화에서부터 18금영화까지 만들어내는 대단한 생산력의 감독이다 보니 이 다섯편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훑기란 불가능하겠지만, 전형적인 미이케 다카시 스타일 영화들과 최근 경향을 비교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이들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배우 아이카와 쇼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 <극도공포대극장 우두> <태양의 상처>에 출연한 그는 그동안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 <극도 흑사회> <일본 흑사회> <제브라맨> 등에도 출연해 미이케 다카시와 유난히 많은 작업을 했다. V시네마로 경력을 시작했고 여전히 V시네마에 출연한다는 점, 2004년 <제브라맨>이 100편째 출연작일 정도로 다작을 즐긴다는 점은 둘의 공통분모일 것이다. <태양의 상처>에서 가족의 복수를 위해 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다.
<46억년의 사랑>(2006) 46億年の戀 출연 마쓰다 류헤이, 안도 마사노부, 구보즈카 슌스케
지옥이 생긴 지 46억년이 됐다, 라고 미이케 다카시는 주장한다. <46억년의 사랑>은 교도소 감방의 한가운데 복도에서 아리요시(마쓰다 류헤이)가 가츠키(안도 마사노부)의 목을 조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교도소쪽의 수사가 시작되고 두 사람의 운명적인 인연이 소개된다. 여릿여릿한 아리요시는 게이바에서 일하다 성폭력을 자행하는 어른을 죽인 죄로, 남성적인 가츠키는 불량배로 살아오다 살인을 저질러 각각, 하지만 같은 날 감옥에 들어온다. 이 대조적인 성향의 두 사람은 급속하게 가까워지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상대방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과연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을까. <46억년의 사랑>은 기존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와 스타일과 주제 면에서 상당히 다르다. 특히 상당 장면이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하는 인위적인 공간에서 펼쳐진다. 검정 또는 원색의 배경과 작위적인 공간 분할은 <도그빌> 등의 라스 폰 트리에를 연상케 할 정도다. <46억년의 사랑>은 미이케 다카시가 멈추지 않고 새로운 영화세계에 도전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다.
<태양의 상처>(2006) 太陽の傷 출연 아이카와 쇼, 사토 아이코, 모리모토 사토시
퇴근 도중 청소년들이 부랑자를 폭행하는 모습을 본 평범한 회사원 가타야마(아이카와 쇼)는 이를 제지한다. 앙심을 품은 리더 가미키(모리모토 사토시)는 가타야마의 딸을 살해하고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언론은 이 사건이 가타야마 때문에 비롯됐다고 보도하고 이 충격으로 그의 아내는 자살한다. 3년 뒤, 가타야마는 출소한 가미키를 찾아나서고, 가미키는 열세살 정도의 아이들을 시켜 가타야마를 제거하려 한다. <태양의 상처>는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답지 않게 매우 진지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시종 보여준다.
<극도공포대극장 우두>(2003) 極道恐怖大劇場 牛頭 출연 소네 히데키, 아이카와 쇼, 요시노 기미카
제목을 봐서는 공포영화일 듯하지만, 실상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 야쿠자 조직의 중간보스 오자키(아이카와 쇼)는 강아지를 보고 ‘야쿠자를 죽이도록 만들어진 개’라고 하는 등 제정신이 아니다. 보스는 부하 미나미(소네 히데키)에게 그를 데리고 나고야로 가라고 지시하지만 나고야 인근 마을에서 오자키는 사라진다. 미나미는 보통 사람들이라 할 수 없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오자키를 애타게 찾아나서고 괴이(하면서도 코믹)한 사건들은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표류가>(2000) 漂流街 출연 테아, 이가흔, 오이카와 미쓰히로
일본계 브라질인이자 소문난 범죄자인 마리오(테아)는 강제 송환당하고 있는 애인 케이(이가흔)를 극적으로 구해낸다. 그는 케이와 함께 일본을 탈출할 생각이다. 하지만 케이에게 집착하는 중국계 마피아 코우(오이카와 미쓰히로)의 방해로 이들의 계획은 어그러지고 만다. 브라질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마리오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맴도는 케이의 운명뿐 아니라 중국계 마피아 코우까지 이곳에서는 뿌리없는 삶이다. 이런 허무한 분위기 속에서 미이케 다카시는 극도의 폭력을 선사한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1999) Dead or Alive 출연 아이카와 쇼, 다케노우치 리키, 이사비시 렌지
중국계 이민자 류이치(다케노우치 리키)는 신주쿠를 장악하겠다는 야심으로 야쿠자들을 살해한다. 삶의 목표는 동생 후유지와 함께 파워를 누리는 것. 하지만 형사 조지마(아이카와 쇼)의 거센 추격이 문제다. 조지마 또한 난치병에 걸린 딸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두 사람은 가족을 걸고 혈투를 벌여야 한다. 만화적인 상상력과 과잉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미이케 다카시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지구를 지켜라!> 못지않게 놀라운 마지막 신 또한 필견의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