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용> 베르나르 베르베르 글, 뫼비우스 그림, 열린책들 펴냄
<파피용>은 마치 그래픽 노블을 글로 읽는 것 같은 책이다. 그래픽 노블을 글과 그림으로 분리해, 글은 더 많이, 그림은 더 함축적으로 만든다면 이런 책이 될까. <개미> <나무>를 비롯해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은 뫼비우스의 그림과 환상적인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책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다져진 디테일을 꼼꼼히 쌓아 거대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보여주었던 작품이 <개미>라면, <파피용>은 우주를 향해 ‘파피용’이라는 이름의 노아의 방주, 즉 우주선을 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세계를 바라보는 베르베르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브 크라메르는 항공 우주국 소속의 엔지니어다. 그는 최고의 요트 선수인 엘리자베트 말로리를 차로 치는 사고를 내고, 그녀는 하반신 불수가 된다. 그 일로 두 사람의 인생이 짓밟혔다. 휴직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브는 빛에 이끌리는 나방을 보고 ‘태양 범선’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태양 범선’은 일반 로켓이 아니라 별빛을 추진 동력으로 이용하는 우주 범선인데, 항공우주국에서 버린 아이디어를 억만장자 맥 나마라가 채택해 돈을 댄다. 폐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맥 나마라의 권력과 이브의 꿈이 결합해 ‘마지막 희망’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이 범선의 이름은 ‘나비’라는 뜻의 ‘빠삐용’으로 정해진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이 우주 범선이 사실상 우주판 ‘노아의 방주’라는 것. 그리고 1200년간 새로운 지구를 찾아 14만4천명이 시속 2000000km가 넘는 속도로 여행을 떠나는 프로젝트로 완성된다. 이브는 우주 범선의 ‘키잡이’로 엘리자베트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지만, 우주로 떠난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마지막 희망’이라는 명명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예측이었는지 현실로 드러나고, 14만4천명의 사람들은 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일단 이야기가 시작되면 정신없이 읽힌다. 희망과 절망, 꿈과 파국을 절묘하게 오가며 이야기는 시속 2000000km로 달려간다. 굳이 분류하자면 SF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야말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선문답을 하는 듯 행간이 깊은 대화들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뫼비우스의 그림은 ‘지금, 여기’와 ‘미래, 그곳’의 시차를 없앤다. 현실에 대한 풍자와 시간을 뛰어넘는 통찰이 베르베르의 손끝에서 하나로 녹아든다. 성찰이 있다지만 웃음도 놓치지 않는다. 가없는 미래가 아득한 과거와 이어지는 대목에 이르면, 종교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그게 베르베르의 의도인지 아닌지까지 알 수는 없지만 상상력에는 믿음이 필요없고, <파피용>은 드넓은 상상력의 바다에서 믿음직한 키잡이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