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반나치 영웅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역을 맡은 톰 크루즈의 신작 <발키리>의 촬영 날짜가 다가오면서 실제 역사의 현장인 벤들러 블록에서의 촬영 허가 여부를 두고 찬반논쟁이 뜨겁다. 벤들러 블록은 히틀러 암살기도를 이끌었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집무실이 자리했었고, 그가 처형당했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문제의 발단은 정부 소속 사이비 종교 담당 전문가 안체 불룸탈(기독교민주연합)이 국방부 장관에게 톰 크루즈 촬영팀의 실제 역사현장에서의 촬영을 금지하게 할 것을 주장하면서부터다. 사이언톨로지 대변인까지 맡고 있는 톰 크루즈가 독일 나치 저항인물 역을 맡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불룸탈은 “장애인은 아예 배제되고, 능력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선전하는 종교를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사이언톨로지의 부당성을 토로했다. 이에 독일 국방부는 급기야 역사현장에서 촬영을 불허할 것을 통보했다. 그러나 실제로 벤들러 블록은 독일 재무부에 속해 있고, 촬영 불허 통보 당시 <발키리> 촬영팀은 허가 신청서조차 내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독일 국방부쪽에서 ‘오버’하며 톰 크루즈를 ‘거부’한 셈이다. 그렇다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신작 촬영이 모두 좌절되는 것은 아니다. 포츠담의 바벨스베르크 촬영장에 건설 중인 세트는 거의 완료 상태다. 또 문제의 현지 촬영장소에서 잡혀 있는 일정은 고작 이틀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사이언톨로지는 합법적 종교로 인정받지만 독일에선 ‘헌법재판소’의 감시를 받는 위험한 사교로 분류되고 있다. ‘개인이 무슨 종교를 믿든 그건 사적 자유’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미국과 나치 역사를 겪어 그와 비슷한 전체주의적 이념과 관련된 것을 두려워하는 독일의 분위기는 대조적일 수밖에 없다. 또 독일 국방부의 촬영 불허 방침은 대규모 할리우드영화가 자신들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하는 제스처다.
이 해프닝은 미국과 독일의 정서 차이로 드러나며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질 조짐이다. <필라델피아 데일리>는 “개인의 종교를 들어 일을 막는 것처럼 나치시대를 연상시키는 것은 없다”며 독일 정부쪽의 처사를 비판했다. 할리우드 몇몇 스타들도 톰 크루즈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런데 국립독일영화진흥원이 <발키리>에 480만유로를 투자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타임스>는 이를 ‘사이언톨로지는 싫지만 미국과의 긴장관계를 무마하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 독일 현지 영화관계자들은 톰 크루즈 영화 촬영 불허에 따른 부정적 여파에 대해 조심스럽게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독일이 ‘영화 찍기 어려운 나라’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의 대규모 영화 프로젝트로 얻는 독일의 경제적 이득도 적지 않다. <발키리> 촬영만으로도 베를린 현지에 5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총예산 6억(?)유로 중 3분의 2가 독일 현지에 투입된다. 할리우드의 영화 기술도 일부 도입되므로 실질적으로는 실보다는 득이 더 많은 것이다. 독일의 유수 언론들도 정부쪽 결정을 ‘헌법에 저촉됨’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독일 일간 <쥐드도이체차이퉁>은 톰 크루즈가 오스카상을 노리며 이 역을 기꺼이 맡았다는 후문이 있는데, 이 사건으로 유명해져 더욱 수상이 유력해졌다며 촬영 금지 조처를 ‘자살골’이라 썼다. 이 해프닝으로 정말 톰 크루즈가 원하던 상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