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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당신은 영화산업 공공의 적?
이영진 2007-07-17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사무국장이 영화계와 영진위 안밖으로 공격받는 까닭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김혜준 사무국장이 연달아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바깥에선 전국영화산업노조가 비난의 활시위를 당겼고 안에선 영진위 노조가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서울 홍릉에 위치한 영진위 사옥은 김 사무국장에 대한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비난을 담은 성명서와 이에 대한 김 사무국장의 해명과 반론문으로 어지럽다. 10년 넘게 한국 영화산업의 핵심 브레인으로 정책 생산에 열을 올렸던 김 사무국장이 영화노조로부터 “무책임하고 독선적인”, “영화산업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여기에 더해 영진위 노조는 무슨 이유로 김 사무국장을 향해 “각오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

영진위는 7월20일 전에 위원회 전체회의를 개최해 영화노조가 문제제기한 ‘분쟁 관련자’인 김 사무국장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영화발전기금 사업계획 투명 공개 및 관련자 해임 등을 요구하며 7월6일부터 영진위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7월6일자 <씨네21> 온라인 국내뉴스 참조) 영화노조는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이 밖에 영진위는 영화노조의 2008년 영화발전기금 세부계획안 공개 요구에 대해 “영진위 전체 회의를 통해 합의된 포괄적 사업내용을 제시하는” 선에서, 노정합의사항 이행 요구에 대해 “영화산업협력위원회 구성 등 영화노조와 영진위가 합의한 부분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협상안을 제시했다.

7월10일 영진위쪽과 협상 타결 소식을 알리며 천막농성을 접은 영화노조는 반응을 자제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이 스크린) 쿼터 축소의 대가로 사채를 조성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등의 공격적인 발언을 내놓았던 최진욱 위원장은 7월12일 “위원회 전체회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면서 말을 아꼈다. 알려졌듯이 6월11일 영화발전기금 관련 국회 보좌진 대상 설명회에서 비롯된 이번 갈등은 영화노조의 논평, 영진위의 반박 보도자료 배포, 민주노동당과 영화노조의 재반박 성명에(<씨네21> 608호 국내뉴스 ‘영화노조-영진위, 쩐의 전쟁’) 이어 한 매체의 영화발전기금 보도에 대한 김 사무국장의 개인적인 반론문에 대해 영화노조가 “노조 비방 내용이 있다”고 문제제기하면서 더욱 불거졌다.

영화계와 영진위의 오해가 화살이 되어

사실 시비를 가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또다시 이 같은 갈등이 재연될 수 있고, 이를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 갈등은 생산적 논의로 이어졌다기보다 오해의 연속으로 점철됐다. 이는 스크린쿼터 축소와 영화발전기금 신설 과정에서 노력 여부와 무관하게 영진위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영화현장과의 소통 채널을 꽤 많이 잃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진위의 한 위원은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로 일하는 게 불편해진 게 사실”이라면서 “지난 1년 동안 급작스러운 변화가 많았고 그럴수록 입장 차이는 커지고. 이를 중재하고 대안을 만들어내야 하는 입장에선 곤란한 점이 이전보다 많았다. 현재 위원들을 중심으로 영진위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한다.

스크린쿼터 축소 및 영화인대책위 등에서는 여전히 “스크린쿼터 축소의 대가인” 영화발전기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에서는 내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을 올해 6월까지 만들어 기금을 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양쪽 모두 몇 차례의 공청회 등을 열었지만 극단적인 입장은 가시적으로는 평행선을 달리듯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영화계와 정부 사이를 오가며 정책을 입안하고 사업을 집행해야 하는 영진위로서는 이만저만한 고민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을 입안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9인 위원회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 실무를 떠맡은 김 사무국장이 표적이 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영진위 노조의 창끝도 김 사무국장을 향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영진위 노조 또한 김혜준 사무국장 해임 요구를 내놓은 상태다. 영진위 노조는 6월 말 대의원대회를 열어 김혜준 사무국장을 노동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불씨는 지난 5월에 발생한 김 사무국장의 ‘부당노동행위성 발언’이다. 영진위 노조는 김 사무국장이 ‘A 씨가 대우 또는 우대를 못 받는 것은 영진위 노조와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다고 말한” 것과 관련 해당 조합원이 1주일 뒤 퇴사를 했고, 이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를 한 김 사무국장의 퇴진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영진위 노조는 이와 관련해 징계를 거부한 안정숙 영진위 위원장 또한 같이 제소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사무국장은 “승급이 될 만한 직원이 승급되지 못한” 아쉬움에 “누군가가 A님에게 불이익을 준 것 아닌가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전 인사 승급 과정에서 “A님에게 불이익을 준 것도 아니고 인사상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고 반론문에서 해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상대적으로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이들이 승급된 사례가 더 많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며, 안정숙 위원장이 징계안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9인 위원회가 이 문제를 다룰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이에 대해 위원장이 직접 징계를 행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안을 종결시킬 수도 없으므로 노조쪽이 다른 조치를 취하도록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과 영진위 노조와의 다툼이 이처럼 골이 팬 데는 김 사무국장의 발언이 부당노동행위에 포함되느냐는 문제보다 더 근원적인 배경이 있다. 한 영진위 관계자는 “올해 초 김 사무국장이 부산발전포럼에 기고한 글에서 영진위가 부산 이전을 앞두고 기술사업을 어떤 식으로든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노조가 농성에 들어가는 등 강경조치를 취했던 것에서 보여지듯 그동안의 앙금이 터져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류상현 영진위 노조위원장도 이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 “한두번이면 재발방지 약속을 받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으니까 이러는 거다.” 반면, 김 사무국장은 올해 초 기술사업 논란과 관련해서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영진위에 대한 관심을 높이자

현재 영진위 위원 3인, 노조위원 1인, 영진위 추천위원 1인 등 총 5명으로 구성된 기술사업 관련 TF팀이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고, 7월 말까지 기술사업에 대한 보고서가 완성되면 이와 관련된 영진위 내부의 논의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과거의 갈등이 다시 어떤 식으로든 재발할 수도 있다. 물론 그건 막아야 한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진통이 아니라면 말이다. “영진위가 가벼운 몸살을 앓고 있는지 아니면 체질 개선이 필요한지는 좀더 두고봐야겠다.” 한 제작자의 말이다. 진단을 위해선 먼저 영화계 안팎에서 영진위에 대한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영진위 또한 영화계와 좀더 몸을 부비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은 편을 가를 때가 아니라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건 누구나 다 알지 않나.

“사안의 전후사정을 헤아려주었으면 한다”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인터뷰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야말로 그가 10년 넘게 정책 이론가로서 일관되게 지녀온 원칙이기도 하다. 최근 논란의 도마에 여러 번 오른 것도 그런 그의 성향과 무관치 않다.

-영화노조쪽의 주장을 접하고서 맨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나.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 전해들은 어느 국회 보좌관의 이야기를 토대로, 아무런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비방 성명이라는 평지풍파를 일으킨 건 다름 아닌 영화노조 아니었나.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비판의 칼을 휘두른 다음 난데없는 기습 공격에 대해 최소한의 방어권을 행사한 쪽을 향해서 납득하기 힘든 발길질을 하다니. 백번 양보해서 영진위쪽에 실무적인 실수가 있었다 치자. 현재 영화노조 집행부의 태도는 흡사 시험문제 한두개 틀린 학생을 당장 퇴학시키지 않으면 그 다음 일은 각오하라고 을러대는 격이다.

-영화노조에선 해임 요구까지 내밀었다. =이유가 참 해괴하다. 영화발전기금 사업안의 내역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게 문제라니. 영화노조는 영진위쪽에 기금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한 적이 없다. 왜 보좌관이 해야 할 얘기를 산업노조 집행부가 대신 하고 있는지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산업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서 문제라는데,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 제시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개인의 가치관을 이유로 해임을 요구하는 건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영화노조는 영화발전기금의 수혜를 받지 못해서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호도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렇다니 어쩌겠나. 일단 인정할 수밖에. 하지만 기획예산처 협의 과정에서 4대 보험 관리 지원 예산이 없어진 것을 산업노조쪽에 통보해주지 않아서 혼선을 빚게 했다는 집행부의 언급이 기왕 있었으니 설명을 좀 덧붙이겠다. 영진위가 사업안으로 준비했다가 기획예산처의 동의를 받지 못한 사업이 몇 가지 있는데, 4대 보험 관리 지원, 지역 영상위원회 협의체 사업, 영화인 자녀 육아시설 마련 등이다. 국가 재정 전체를 총괄하는 기획예산처는 복지 관련 예산 집행을 영진위가 별도로 하겠다는 건 곤란하다는 입장을 폈다. 완강하게 일반 원칙을 내세우는 기획예산처를 한정된 시간 동안 설득하는 일에 일단 실패했다. 하지만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4대 보험 관리 지원 예산이 국회의원들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났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사안에 대한 제작자단체의 생각이 다르고 노조의 생각이 다르다. 사업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발전기금의 운용을 책임진 주체로서의 영진위, 그중에서도 사무국장을 맡은 사람에게는, 영화계를 대신하는 협상팀장이자 설득팀장의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 취지는 좋으나 영화계 바깥의 정책 주체들을 설득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하거나, 예산 확정 이후에도 실행 여부가 불투명한 사업들일수록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복잡하다. 이런 사업들을 포함해서 기획예산처가 수용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여러 사업들이 영진위가 짠 2008년 예산에 다시 들어가 있다. 이런 전후 사정을 어느 정도는 헤아려주어야 한다. 스탭 처우 개선에 관한 방안을 영진위 안에서 가장 먼저 다룬 것이 바로 나다. 4대 보험 의무화를 중심으로 하는 사업의 뼈대도 직접 세웠었다. 사안의 성격이나 역할을 비교한다면, 한-미 FTA 협상의 김현종 본부장이나 김종훈 협상대표 대하듯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스크린쿼터 축소와 영화발전기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 =영화계 많은 분들이 스크린쿼터 축소의 대가로 영화발전기금이 지원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존중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정책을 다루는 정부나 국회편에서 보면 기금은 스크린쿼터 축소의 대책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김대중 정부 때 영화진흥금고에 1500억원의 국고가 지원된 적이 있다. 애초 대통령선거 공약에 들어 있던 500억원을 제외한 1천억원은 스크린쿼터 축소를 위한 사전 여건 조성을 위해 지원됐다. 먼저 지원해주면 설득이 더 쉬울 거라는 판단이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축소 조정에 실패했고, 국고는 그대로 지원되었다. 학습효과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이번엔 먼저 축소 결정을 내리고, 심지어 법령까지 정비한 다음에, 국고를 사후에 지원해주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영화계에서 보면 발전기금과 쿼터를 맞바꾼 바 없고, 국회 비준이 남아 있으므로 상황이 완전히 종결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기금은 일방적으로 주어졌다. 따라서 영화계로서는 발전기금의 효과적인 집행을 위해서도 애써야 하고, 방법이 있다면 쿼터의 회복을 위해서도 계속 애써야 한다. 특정 단체가 영화발전을 위해서 기금을 지원받는다고 해서 그 단체가 지켜온 문화주권 지키기라는 원칙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