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이시구로 마사카즈 지음/ 서울문화사 펴냄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는 이상한 메이드물이다. 메이드 카페가 아닌 메이드 다방이 주무대고, 이 다방의 첫 번째 메이드인 여고생 호토리는 손님이 오면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대신 “어서 옵쇼”라고 인사한다. 게다가 이 다방의 주인이자 메이드장은 음산한 인상의 할머니다. 메이드 카페가 인기라는 말을 듣고 다방 간판에 ‘메이드’라는 이름만 얹어 살짝 업종변경(?)을 한 주인할머니는, 10년간 공짜로 카레를 먹어 온 호토리를 메이드로 아르바이트하게 만든다. 메이드가 뭔지도 모르는 할머니와 호토리가 메이드복을 입는다고 다방에 손님이 들끓을 턱이 없다. 손님은 호토리를 짝사랑해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 소꿉친구 사나다뿐. 어느 날 호토리의 급우 타츠노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나다가 매일같이 다방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고는 ‘메이드 다방 씨사이드’의 메이드 2호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엠마>와 <아즈망가 대왕>을 합해놓은 분위기에 안드로메다의 기운을 섞고, <삐리리∼불어봐!재규어>를 첨가하면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가 될까. 언뜻 보기엔 ‘메이드물’이지만 사실 매 에피소드가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 동네 다방에서 일하는 호토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으니, 당연히 소재는 작고 가벼운 것들이다. 호토리는 탐정이 되고 싶어하는데, 쓸데없이 폭주하는 바람에 짝사랑하는 선생님으로부터 구박만 받는다. 호토리를 좋아하는 사나다는 혼자 얼굴만 붉힐 뿐 변변히 대시를 하지 못한다. 호토리가 심부름을 가거나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사소한 소재들을 기발하게 비트니, 웃다 보면 2권은 금방이다. 탐정을 꿈꾸는 호토리가 좋아하는 수학선생님 성이 ‘모리아키’라든가(셜록 홈스의 천적은 ‘모리아티’ 교수다), 숨겨놓은 에로책들을 호토리에게 들킨 사나다가 좌절하는 대목에서 다와라 마치의 단가 <샐러드 기념일>(허밍 어반 스테레오가 노래로도 만들었다)을 패러디한 ‘사나다 기념일’ 같은 대목들을 발견하는 일은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다.
작가 이시구로 마사카즈는, “전 진짜 메이드 카페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메이드에 대한 특별한 애착도 없습니다”라고 한다.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는 저자가 도쿄 도내 상점가에 이사를 갔을 때 커뮤니케이션 불량의 대명사격인 도쿄에도 뜻밖에 인정넘치는 사람들이 살고 있더라는 발견을 했던 일을 계기로 구상한 만화기 때문이다. 메이드보다 마을에 방점이 찍혀 있으니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씀씀이에, 그냥 지나치기 힘든 일상적 사건에 명랑한 기운을 불어넣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공포물에 나올 법한 웃음을 보여주는 메이드장 할머니부터 미친 과학자 악당 같은 분노 폭발 장면을 보여주는 모리아키 선생님까지, 주조연을 가릴 수 없는 캐릭터들의 개성 역시 압권이다.